고대사

이게 무슨 파키스탄이야! 노벨상 수상자조차 몸붕인 나라

이게 무슨 파키스탄이야! 노벨상 수상자조차 몸붕인 나라

노벨상 수상자에게도 자리가 없는 나라

파키스탄 건국 이후 이 글이 쓰인 2019년까지 파키스탄 국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단 두 명뿐이다. 첫 번째는 물리학자 압두스 살람 박사이고, 두 번째는 스와트 지역 밍고라 시 출신의 말랄라 유수프자이다.

그런데 압두스 살람 박사는 아마디야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파키스탄은 그를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말랄라 유수프자이는 탈레반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 대상으로 지목되기까지 했다. 세계 최고의 영예를 안은 인물조차 자국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파키스탄의 현실이다.

오사마 빈 라덴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다

파키스탄은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로 악명이 높다. 9·11 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한 오사마 빈 라덴에게 아보타바드에 은신처를 제공했으며, 오사마를 숨겨주었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자 파키스탄은 오사마 빈 라덴이 자국에 없다고 끝까지 부인했다.

그러나 2011년 5월 2일 밤, 미군은 기습적으로 파키스탄 영공에 진입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고, 그의 시신은 바다의 미지의 장소에 수장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에 깊은 균열이 생기면서, 파키스탄은 점차 중국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메모게이트 사건으로 얼룩진 파키스탄의 명성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파키스탄 군부와 정치 지도층 사이의 불신이 깊어졌는데, 이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 바로 메모게이트 사건이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뒤 파키스탄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당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슈파크 페르베즈 카야니 장군이 그런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이 폭로되면서 주미 파키스탄 대사였던 후세인 하카니는 결국 사임해야 했다. 민간 정부가 자국 군부를 견제하기 위해 외세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파키스탄의 국제적 이미지에 크나큰 흠집을 남겼다.

기일리 총리, '부정직' 판정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과 시드 유수프 라자 기일리 총리를 포함한 수많은 파키스탄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이 부패 혐의로 법원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2011년 파키스탄 정부는 국민화해령(NRO)을 시행해 약 8,000건에 달하는 부패 사건을 일괄 종결했다.

이에 파키스탄 대법원은 국가책임국(NAB)에 해당 부패 사건들을 다시 열 것을 명령했다. 대법원 5인 심판부는 유수프 라자 기일리 총리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놓으며, 그의 청렴성에 의문이 있다고 지적하고 공직 서약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의 강경한 경고 이후 파키스탄 군과 정보기관 ISI는 기일리 총리와 자르다리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했다. 카야니 육군참모총장은 메모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총리가 자신과 ISI 국장에 대해 한 '심각한' 발언이 국가에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정부는 육군참모총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국방장관 칼리드 나임 로디 중장을 해임하는 등 갈등이 극에 달했다.

2012년 4월 26일, 파키스탄 대법원은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에 대한 부패 사건 재개를 요청하는 서한을 스위스 당국에 보내라는 명령에 불복한 혐의로 기일리 총리에게 경멸죄를 인정했다. 이어 같은 해 6월 19일, 대법원은 그의 총리직 계속 수행 자격을 박탈했다. 훗날 임란 칸 정부는 기일리 전 총리의 출국마저 금지하며 그의 행보를 철저히 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