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발칸 전쟁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에서 언급했듯이, 발칸반도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은 국력의 쇠퇴와 민족주의 운동의 활성화로 인해 독립을 추구하는 지역과 독립 이후 세력 확장을 노리는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여기에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라는 열강들의 야욕까지 더해지고, 오스만 정부 내부의 혼란까지 겹치면서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에서는 두 차례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 두 차례의 발칸 전쟁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전쟁에서 형성된 진영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발칸 전쟁을 이해하면 제1차 세계대전을 더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동요, 청년 투르크 혁명

발칸 전쟁 직전 무렵, 러일전쟁에서 신흥국 일본이 유럽 열강을 꺾으면서 아시아 각지에서 민족운동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낡은 체제를 타파하고 입헌 국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08년의 청년 투르크 혁명입니다.

청년 투르크 혁명으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폐위되고 괴뢰 술탄이 옹립되었지만, 폐위되었어야 할 전 술탄이 실권을 계속 쥐고 있어 내전이 이어지는 등 정국은 극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청년 투르크 혁명이 국제 정세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 불가리아가 1908년 독립을 선언했다는 점
  •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다는 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인접한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강대국 오스트리아가 자신들의 곁으로 세력을 뻗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세르비아의 민족 구성 대다수가 슬라브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슬라브 민족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범슬라브주의'의 중심에는 러시아가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의 배후에는 강대국 러시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것입니다.

한편 오스만 제국 내부의 신세력 역시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 같은 민족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범투르크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범슬라브주의' 외에도 게르만 민족의 통합을 주장하는 독일 중심의 '범게르만주의'와 같은 민족주의 사상들이 당시 국제 정세를 악화시키는 데 한몫했습니다.

발칸 동맹의 결성

그러던 중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네 나라가 1912년 러시아 주도로 발칸 동맹을 결성합니다.

쇠퇴했지만 여전히 패권을 쥔 오스만 제국의 존재 자체가 발칸 국가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고, 하물며 '범투르크주의'를 내세우는 이상 결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이탈로-투르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발칸 국가들에게는 절호조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오스만 제국보다 오스트리아의 견제가 더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쇠퇴하는 와중에라도 세력을 확장하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고, 러시아는 "무역 확장을 위해 부동항을 확보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발칸반도에 대한 야망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야망을 꺾기 위해 발칸 국가들의 동맹을 주도하게 됩니다.

발칸 전쟁의 발발과 제1차 세계대전 진영의 형성

발칸 동맹이 결성된 1912년, 유럽 열강은 이탈로-투르크 전쟁과 그 전해 독일·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제2차 모로코 사건으로 인해 발칸반도를 주시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탈로-투르크 전쟁은 북아프리카의 트리폴리(훗날의 리비아)를 둘러싸고 이탈리아와 오스만 제국이 벌인 전쟁으로, 직접적인 원인은 청년 투르크 혁명 이후 트리폴리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칸 동맹은 이러한 일련의 혼란 속에서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고자 했습니다. 이탈로-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은 발칸 국가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한편 열강들은 발칸반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발칸 국가들에게 "전쟁은 좋지 않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제1차 발칸 전쟁 (1912~1913)

애초에 열강들은 발칸반도와 오스만 제국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전쟁을 막지 못했고, 발칸 동맹은 이탈로-투르크 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전쟁이 시작됩니다.

전쟁에서 밀리고 있던 오스만 제국으로서는 발칸 동맹까지 상대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 동맹에 대비하기 위해 급히 이탈리아와 강화 조약을 맺고 트리폴리와 리비아의 종주권을 이탈리아에 넘겼지만, 발칸 동맹의 침공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1차 발칸 전쟁입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발칸 동맹은 이미 지쳐 있던 오스만 제국을 격파합니다.

동맹의 중심이었던 세르비아는 아드리아해 연안까지 진격했습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영토 방향이었고 세르비아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강대국 간 충돌로 번질 위기였지만, 영국이 러시아를,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각각 억제하면서 어떻게든 강대국 간 전면전의 위험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발칸 동맹은 영토 확장에 성공합니다.

제2차 발칸 전쟁 (1913)

제1차 발칸 전쟁 이후, 동맹국들은 전쟁으로 얻은 영토 분배 문제를 두고 내분을 일으킵니다.

세르비아 · 몬테네그로 · 그리스 vs 불가리아

진영은 위와 같이 갈라졌습니다. 고립된 채 홀로 싸운 불가리아는 패배했고, 마케도니아 등의 영토를 잃고 말았습니다.

연전연승으로 승리를 거둔 동맹의 핵심인 세르비아와 그 배후의 러시아에 대해,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는 깊은 반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 즉 동맹국 측으로 참전하게 된 데에는 바로 이 요인이 크게 작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