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약탈한 자금을 숨겨둔 은행 계좌는 '막스 하일리거(Max Heiliger)'라는 기묘한 인물의 명의로 개설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인물은 실존하지 않았다.
살해당한 희생자들의 재산까지 약탈하다
나치 정권이 강제 수용소와 절멸 수용소에서 저지른 수많은 만행 가운데서도, 살해된 희생자들의 재산을 착취하는 행위는 가장 만연하게 이루어진 관행 중 하나였다.
보석, 금니, 시계, 다이아몬드, 동전과 지폐 같은 법정 통화, 심지어 안경처럼 평범한 물건(귀금속 부분 포함)까지 약탈품이 되었다. 이 약탈의 주된 주체는 무장친위대(Schutzstaffel), 이른바 SS였다.
처음에는 모든 금(치아에 박힌 금 포함)이 프로이센 조폐국으로 보내져 괴금 형태로 제련되었다. 보석과 기타 물건들은 베를린 등 각 도시의 암시장이나 고리대금업자에게 팔렸고, 다이아몬드는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등 이른바 '중립국'에서 매각되었다.

가상의 인물 '막스 하일리거'의 탄생
이렇게 모인 막대한 자금은 이후 은행 계좌를 통해 세탁되었지만, 당연히 어떤 나치 요인도 자신의 이름을 계좌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인리히 히믈러와 발터 펑크(Walther Funk, 1876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던 독일 중앙은행 라이히스방크의 총재)는 해결책을 모색했다.
두 사람은 비밀리에 약탈 자금을 보관할 모든 계좌를 막스 하일리거 명의로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막스 하일리거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독일어에서 '하일리거(heiliger)'는 '성스러운'이라는 뜻인데, 히믈러와 펑크는 이 이름을 일종의 역겨운 블랙 유머로 만들어 낸 것이다.
윌리엄 L. 시러(William L. Shirer)에 따르면, 이미 1942년경 라이히스방크는 '하일리거 씨'의 예금 급증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프로이센 조폐국에서 온 괴금과 귀중품들이 그대로 입금되면서 은행 금고는 넘쳐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자금 세탁 방식을 도입했다. 전당포 판매를 통해 물품을 현금으로 바꾼 뒤, 그 돈을 하일리거 계좌로 이체한 것이다. 재무부 장관이 계좌의 잔액과 수지를 관리하며, 이 자금으로 SS와 기타 나치 조직의 활동비를 지급했다.

스스로 재원을 조달한 홀로코스트
결국 홀로코스트는 '자기충당' 구조로 운영되었다. 가보르 카다르(Gábor Kadar)와 졸탄 바기(Zoltán Vági)가 나치 대량학살의 자금 조달을 다룬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이 자금은 절멸 수용소의 유지·운영 비용 등에 사용되었다. 특히 아우슈비츠가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1944년 11월 24일 프로이센 조폐국으로 발송된 금만 해도 25톤을 넘었다.
사라진 금괴, 그리고 흔적 없는 하일리거
패색이 짙어지자 나치는 그동안 모은 금괴를 버려진 광산 등 여러 곳에 숨기려 했다. 상당 부분은 영원히 사라졌고, 이후로도 끊임없는 탐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실제로 지금도 괴금을 가득 실은 열차나 비밀 지하 저장고의 발견 소식이 종종 전해진다.
다만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그 가상의 계좌 소유주, '막스 하일리거' 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