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존왕양이 운동과 요시다 쇼인의 등장

페리 제독의 흑선 내항 이후 외국 선박이 잇달아 일본에 찾아들었고, 청나라가 아편전쟁과 애로 전쟁(제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충격은 일본의 외교 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 정치의 핵심 축은 막부를 중심으로 한 개국파가 추진한 공무합체(公武合体) 노선과, 조정을 중심으로 한 존왕양이파 사이의 대립이었습니다.

존왕양이 사상의 시작

존왕양이(尊王攘夷)는 두 개념이 결합된 사상입니다. 존왕(尊王)은 '천황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성주학(程朱學,주자학)을 토대로 하며, 양이(攘夷)는 '외세를 몰아낸다'는 의미로, 본래는 각각 별개의 사상으로 존재했습니다.

조슈번, 도사번, 사쓰마번 등이 지원한 많은 국학자들에 의해 전국의 번교(藩校)에서 가르쳐진 존왕양이 사상은 미토학(水戸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세기 말부터 에도 시대 말기까지 이어진 미토번의 학문인 미토학은 내우외환에 직면한 국가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독특한 관점에서 제시해 왔습니다.

그 사상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 바로 후지타 도코(藤田東湖)입니다.

후지타 도코는 미토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德川齊昭)에게 번정 개혁을 맡으면서 점차 막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는 천황의 전통적 권위를 배경으로, 막부를 중심으로 한 국가 체제를 강화해 외세로부터 독립과 안보를 확보하려는 존왕양이 사상의 실현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장군 후계자 다툼에서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에게 패배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이이 나오스케는 천황의 허가 없이 미일수호통상조약에 서명했고, 이에 분노한 고메이 천황(孝明天皇)은 막부를 거치지 않고 미토번에 직접 밀칙(密勅,천황의 친필 명령서)을 내리는 소위 '보오의 밀칙(戊午の密勅)'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막부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고, 이이 나오스케는 존왕파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인 안세이 대옥(安政の大獄)을 단행합니다. 이에 분개한 미토번의 하급 무사들은 번을 탈출해 낭인이 되었고, 사쓰마 번사들과 긴밀히 연락해 사쿠라다몬 사건(桜田門外の変)을 일으키게 됩니다.

요시다 쇼인과 안세이 대옥

이이 나오스케가 안세이 대옥에서 처형한 인물 가운데는 조슈번의 수많은 존왕 사상가를 길러낸 송하촌숙(松下村塾)의 스승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있었습니다. 쇼인은 신분을 불문하고 숙생을 받아들였으며,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요시다 도시마로(吉田稔麿)·이리에 구이치(入江九一) 등 막말의 격동기를 이끈 인사 다수가 이 학숙의 문을 두드렸다고 전해집니다.

요시다 쇼인은 하급 무사 등 야심 있는 인재들의 기상을 일본 변혁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초망기립론(草莽崛起論)을 설파했습니다. 여기서 '초망(草莽)'은 풀숲에 숨어 있는 은사, 즉 일반 민중을 가리키고, '기립(崛起)'은 그들이 일제히 일어선다는 뜻입니다.

쇼인은 마쓰시타무라의 숙생들에게 책상 위의 학문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제자 다수가 막말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한 것은 이러한 실천 중심의 교육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송하촌숙 건물은 하기시(萩市) 쇼인 신사(松陰神社) 경내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습니다. * 위 사진이 그 건물입니다.

쇼인 자신은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천황의 칙사 없이 체결된 것을 비판하고,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노중(老中)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막부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쇼인의 죽음 이후 다카스기 신사쿠 등 제자들이 그 유지를 계승해 조슈번의 방침을 존왕양이로 전환시키고 양이 실행에 나섰습니다.

이에 호응하듯 도사번에서도 다케치 한페이타(武市半平太)가 이끄는 도사근왕당(土佐勤王党)이라는 존왕양이 조직이 등장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马)·나카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 등이 여기에 속해 '초망의 지사'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개국파 번정 총재 요시다 도요(吉田東洋)를 암살해 도사의 번론을 근왕(勤王)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고, 교토로 올라가 근왕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때까지 존왕양이를 주장한 세력은 주로 유력 번의 번사, 낭인,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세이 대옥 이후에는 향촌의 지식층과 부호 상인까지 포함해, 신분과 지위를 넘어 같은 목적을 위해 일어선 유지들이 크게 늘어났고, 운동은 점차 토막(討幕),즉 막부 타도의 성격을 짙게 띠게 되었습니다.

이이 나오스케의 안세이 대옥은 막부 권력 강화를 노린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막부에 대한 규범 의식을 약화시키고 인재를 잃게 만들어 근왕 운동을 더욱 격화시켰으며, 정세는 결국 토막 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