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랑스 인민전선의 창설: 위기의 시대에 탄생한 좌파 연합

1930년대 초, 프랑스를 덮친 삼중의 위기

1930년대 초반의 프랑스는 여러 겹의 난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 경제 위기: 1929년 미국발 대공황이 프랑스에까지 파급되면서 국민의 구매력은 감소하고 실업률은 급증했습니다.
  • 정치·도덕적 위기: 내각이 잇달아 교체되어도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국민의 제도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무너져갔습니다. 특히 1934년 초에 터진 스타비스키 사건—프랑스 정치인들에게 부정한 이익을 안겨 준 사기꾼의 횡령 스캔들—은 이러한 불신에 기름을 부웠습니다.
  • 파시즘과 내셔널리즘의 부상: 극우 세력의 성장은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었고,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34년 2월 6일, 크루아 드 푀(Croix de feu), 카멜로 뒤 투아(Camelots du roi) 등 극우 단체들이 반의회 시위를 벌여 16명의 사망자를 낸 폭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프랑스 인민전선의 창설: 위기의 시대에 탄생한 좌파 연합

주요 인물

  • 레옹 블룸(Léon Blum)
  • 에두아르 달라디에(Édouard Daladier)

연합의 형성 과정

인민전선은 프랑스 공산당(PCF), 사회당(SFIO), 급진당으로 구성된 좌파 연합이었습니다. 이 연합의 탄생에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첫걸음은 공산당이 내디뎠습니다.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르던 PCF는 1934년 초까지 '계급 대 계급(class against class)' 전략을 고수하며 소위 부르주아 공화국 안에서의 연합을 거부해 왔습니다. 그러나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노선을 재검토하며 개방으로 선회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2월 6일 극우의 폭동에 맞서 2월 9일과 12일, 좌파 전 진영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1934년 7월에는 SFIO와 협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급진당까지 가세하여 '인민 집회(Rassemblement populaire)'가 꾸려졌습니다.
1935년 7월 14일, 약 50개에 달하는 단체와 정당이 극우의 부상에 맞서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의 조직위원회는 '인민 집회 전국위원회'로 발전하여 공동 정치 강령을 마련하고, 이를 1936년 봄 총선에 내걸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각 당의 입장 차이를 조율한 강령은 공화국 수호와 경제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빵, 평화, 자유'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었습니다.

결과와 영향

  • 인민전선 연합은 1936년 4~5월 총선에서 승리했습니다. 레옹 블룸이 정부수반으로 선출되어 1936년 6월 4일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 블룸의 집권과 때를 같이해 대규모 파업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노동자들은 인민전선에서 변화의 희망을 읽었고, 이 시기 파업 참가자만 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 1936년 6월 7일, 레옹 블룸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단체를 한자리에 모아 마티뇽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주당 노동시간이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되고, 유급 휴가가 도입되며, 결사의 자유가 인정되고, 단체교섭 제도가 마련되는 등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역사적 사회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 그러나 1938년 4월 7일, 레옹 블룸은 두 번째 총리 임기를 마감하며 물러났고, 인민전선은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연합 내부의 갈등, 스페인 내전에 대한 불개입, 파시즘 부상 앞에서의 무력함 등이 인민전선의 업적을 크게 훼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