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불타는 돼지가 코끼리를 이겼다? 고대·중세 전쟁에서 실제 사용된 기이한 동물 무기의 역사

인간이 전쟁에서 스스로를 향해 잔혹함을 멈춘 적이 드물다면, 인간을 위해 싸우는 동물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개, 말, 비둘기, 벌, 짐운반 동물들은 물론 최근에는 돌고래까지 전쟁이라는 대혼란 속에 동원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고대에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투 코끼리입니다. 인도나 카르타고 같은 일부 민족의 군대에서 핵심 전력을 담당했던, 말하자면 살아있는 전차(탱크)였죠. 전사를 보호하는 갑옷, 엄니에 부착한 칼날, 몸통에 두른 사슬 등 크기에 맞춘 무장이 더해진 코끼리 부대의 진격은 상대에게 압도적인 공포감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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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강력한 적의 돌격을 막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했고, 여러 고전 문헌에 따르면 그 해답은 의외로 돼지라는 또 다른 동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돼지 자체보다는 끙끙거리는 비명 소리였습니다. 코끼리는 이 소리에 극도로 공포를 느껴 대열이 붕괴하고 통제를 잃으며 아군 진영에 혼란을 일으켰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연대기는 돼지를 어떻게 비명 지르게 만들었는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방법은 다름 아닌 몸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적진에 불을 옮기고 올바른 방향으로 달려가도록 세심한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살아있는 생명체가 화염에 휩싸인 채 오래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활용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독특한 '돼지 무기'의 역사적 실재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실제 사용된 사례가 여럿 기록되어 있고 일부는 중요한 전투와 연결됩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저서 De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빠르면 1세기경부터 가축이 아닌 야생 짐승, 즉 사자와 멧돼지의 군사적 활용을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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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경우 그 이전의 기록도 있습니다. 람세스 2세가 애완용 사자를 거느리고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와 싸웠다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대(大) 플리니우스는 서기 77년부터 출판된 37권짜리 백과사전 Naturalis Historia(박물지)에서, 클라우디오스 아일리아노스는 De Natura Animalium(동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각각 이 무시무시한 효과를 숫양에게까지 확장해 설명하며, 로마인들이 기원전 275년 피루스의 전투 코끼리를 상대로 두 종류의 동물을 모두 동원했다고 전합니다.

에피루스(그리스 서부, 현재 그리스와 알바니아에 걸쳐 있음)와 마케도니아의 왕 피루스는 보병 2만 명과 기병 3천 명, 그리고 코끼리 500마리로 이루어진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왔습니다. 로마의 팽창주의에 맞서, 로마의 지배를 두려워한 타렌툼 등 여러 민족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원정 전역 전체를 다루기보다는 최후의 대결인 말라벤툼 전투(베네벤토)만 짚어보겠습니다. 에피루스의 밀집 대형과 로마 군단은 어느 쪽도 상대 대열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팽팽한 공방을 벌였고, 피루스는 승부를 내기 위해 코끼리들을 로마군 측면으로 돌격시키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로마 집정관 덴타투스는 이러한 전개를 예견하고 기발한 대책을 준비해 두었으니, 바로 기름을 뒤집어씌운 돼지 떼였습니다. 이들에게 불을 붙여 적의 거구에게 몰아붙여 공포를 유발한다는 작전이었죠. 고전 기록의 한 버전은 로마 궁수들이 화살에 불을 붙여 거대 동물을 상대로 쏘았다는 공을 돌리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것은, 코끼리들이 아군 전선 안쪽에 혼란을 일으켰고 로마군은 막대한 노력 끝에야 통제권을 되찾았으며, 코끼리들은 추가 피해를 피하기 위해 후방으로 철수했다는 점입니다. 최종 결과는 코끼리 2마리가 죽고 8마리가 포획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소위 알렉산드로스 로망스를 보면, 코끼리를 겁주기 위한 돼지의 사용은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작품은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의 업적을 미화한 그리스 전설 모음집으로, 그리스 역사가 칼리스테네스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일부만 집필했고 나머지는 3세기의 편찬물이기에 흔히 '위(僞)칼리스테네스'라고 불립니다.

또 다른 마케도니아 출신 작가 폴리아이노스는 8권 분량의 군사 논문 Strategika(전략)에서 기원전 266년의 사건을 기록합니다. 포위당한 메가라 시민들이 송진을 묻힌 돼지에게 불을 붙여,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 왕의 코끼리 부대를 향해 내몰자 코끼리들이 혼란에 빠져 주인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폴리아이노스의 기록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교훈적 의도를 담아 검증된 사실만을 다룬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불타는 돼지가 코끼리를 이겼다? 고대·중세 전쟁에서 실제 사용된 기이한 동물 무기의 역사

고대와 중세의 경계에 이르러서도 관련 기록은 이어집니다. 6세기 비잔틴 역사가 카이사레아의 프로코피오스는 저서 전쟁사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은 사례를 상세히 전합니다. 또 다른 포위 도시였던 에데사의 수비군들은 밧줄에 묶은 돼지를 성벽 위에서 내려, 포위군의 코끼리가 그 비명 소리에 겁먹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프로코피오스의 증언 역시 신뢰할 만한데, 그가 유명한 장군 벨리사리우스의 비서관이었고 사산조 페르시아, 반달족, 동고트족을 상대로 한 원정에 직접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을 붙이든 아니든 돼지를 무기로 삼는 관행은 제한적이었고, 전투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결국 사라질 운명이었습니다.

샤를마뉴가 코끼리를 보유했다는 기록은 중세 이후의 증언에 불과하지만, 프리드리히 2세 호엔슈타우펜이 덴마크 원정에 데리고 간 코끼리(크레모나 공성전에서 사용) 역시 일화적 의미가 큰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오직 아시아에서만 코끼리는 계속해서 군대의 일부로 남았습니다. 특히 인도는 수백 마리의 전투 코끼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1398년 티무르(타메를란)의 진격에 맞서 이들을 동원했습니다. 티무르는 돼지 무기의 변형된 형태로 이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낙타 등에 짚 단을 싣게 하고 여기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몰아붙인 것입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무기를 얹지 않은 낙타의 낯선 체취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전해지며, 이는 다른 동물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