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스탈린의 콜호즈 집단화 정책과 소련 대기근의 발생

배경: 혁명 이후 소련 농촌의 상황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1924년 1월 21일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스탈린이 소련의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 그는 중앙집권적 통치 체계를 물려받았으며, 빠르게 개인숭배에 기반한 공포정치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소련은 본질적으로 농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였습니다. 국가는 1922년 대규모 농장을 폐지하기로 결정했지만, 농민 계층 내부는 균형 잡힌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농기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극빈층이 있는가 하면, '쿨라크(kulaks)'라고 불린 부유한 지주 계층도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곡물과 육류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쿨라크들은 공산주의 원칙에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전 시기의 강제 징발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곡물을 국가에 팔기를 거부했습니다. 레닌이 1차 대전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 도입했던 온건 경제정책, 즉 신경제정책(NEP)은 결국 스탈린에 의해 중단되고 맙니다.

집단화의 강행 (1929–1933)

스탈린의 콜호즈 집단화 정책과 소련 대기근의 발생

핵심 인물

요세프 스탈린(Joseph Stalin)

경과

스탈린은 1928년 10월 1일 첫 번째 5개년 계획을 착수합니다. 그 목표는 농업으로부터 재원을 조달하여 소련을 산업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1928년 1월에는 징발령이 서명되어 쿨라크들은 수확물을 국가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생산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강철의 인간'이라 불린 스탈린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토지 집단화를 추진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해서 국영농장(소브호즈)과 협동조합 형태로 묶인 집단농장(콜호즈)이 도입되었습니다. 토지 집단화는 강제와 공포에 기반했습니다. 콜호즈 가입을 거부하는 농민에게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거나 강제 이주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쿨라크들은 인민과 혁명의 적으로 규정되어 시베리아의 노동수용소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이른바 '비쿨라크화(dékulakisation)' 정책으로 약 200만 명의 농민이 고향을 떠나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농민들의 저항 또한 거셌습니다. 그들은 작물을 파괴하고 가축을 학살하며 맞섰지만, 결국 다수는 집단화된 조직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1934년에는 소련 국가가 농산물의 절반 가까이를 터무니없이 낮은 매입 가격으로 가져가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과: 대기근과 희생자

  • 부유 농민의 대규모 추방과 급격하고 강압적인 집단화는 소련 농업 전반을 심각하게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농업 생산 자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고, 소련은 1932년부터 1933년까지 기근을 겪게 됩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크게 피해를 입어 약 400만 명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 카자흐스탄과 볼가 강 유역, 쿠반 지역 역시 기근의 참화가 극심했습니다. 전체적으로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 스탈린 사후 그의 서신 연구에 따르면, 소련 지도자는 집단화 프로그램에 따르기를 거부한 농민들을 응징하기 위해 기근을 의도적으로 더욱 심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