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흥망 (1918~1933)

제1차 세계대전과 독일 제국의 몰락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로 구성된 '삼국 동맹'과 프랑스·영국·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협상국'이 맞선 대규모 전쟁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탈리아는 협상국 진영에 합류했고, 미국 역시 이후 전열에 합류하며 전세를 기울게 만들었다.

이 전쟁은 참호 속에서 교착 상태로 장기화되며 참전국들의 국력을 갉아먹었는데, 특히 독일의 소모가 극심했다. 빌헬름 2세의 제국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시달렸고, 극심한 물자 부족으로 민생이 파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독일 본토에서 직접적인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던 탓에, 독일 민중은 끝내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흥망 (1918~1933)

기간: 1918~1933년

주요 인물

  • 빌헬름 2세 (독일 황제)
  • 바덴 공자 막시밀리안
  • 필리프 샤이데만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에리히 루덴도르프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 구스타프 바우어
  •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
  • 발터 폰 뤼트비츠
  • 구스타프 노스케
  • 볼프강 카프
  • 로자 룩셈부르크
  • 카를 리프크네흐트
  • 아돌프 히틀러

전개 과정: 패전과 혁명, 공화국의 탄생

1918년 7월, 독일군은 마지막 대공세인 제2차 마른 전투를 감행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진 빌레르코트레 방면의 연합군 반격과 8월 8일 전투의 참패는 전쟁의 승패를 더 이상 의심할 여지 없이 확정해 버렸다.

같은 해 11월 9일, 민중의 봉기와 신임 총리 바덴 공자 막시밀리안의 압박 속에 황제 빌헬름 2세는 퇴위했다. 혁명 확산을 우려한 사회민주당(SPD) 지도자 필리프 샤이데만은 국회의사당(라이히스타크) 발코니에서 공화국의 출범을 선포했고, 독립사회민주당(USPD)의 카를 리프크네흐트도 뒤이어 같은 선언을 내놓았다. 이처럼 탄생한 젊은 바이마르 공화국은 문관 정치인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의 서명으로 1918년 11월 11일, 르통드 인근 콩피에뉴 숲 한가운데서 휴전 협정에 조인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들고일어났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에리히 루덴도르프 등 독일의 고위 인사들은 군의 패전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이른바 '등 뒤에서 꽂힌 칼', 즉 '배후 중상설'을 퍼뜨렸다. 이러한 여론의 반발 속에서 태어난 바이마르 공화국은 1월의 유혈 사태가 가라앉은 직후인 1919년 1월 19일 제헌 의회를 통해 정식으로 출범했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대통령이 되었고, 샤이데만이 첫 번째 내각을 이끌었다.

새 정권에 대한 박해는 더욱 거세졌다. 1919년 6월 28일 신임 총리 구스타프 바우어가 서명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국민들에게 '굴욕의 조약'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책임은 모두 새 공화국에 돌려졌다. 여기에 러시아 혁명에서 불어온 혁명의 물결이 겹쳤다. 독일 최초의 공산당인 독일 공산당(KPD)은 결성 직후부터 시위와 노동자 평의회 운동을 확산시켰고, 이에 맞선 자유군단(프라이코어)과 정규군, 특히 발터 폰 뤼트비츠와 구스타프 노스케는 폭력적으로 봉기를 진압했다.

'피의 크리스마스' 사건, 스파르타쿠스단 봉기, 카프 일변, 루르 지역 봉기, 뮌헨의 맥주홀 폭동 등에 드러나듯 바이마르 공화국은 끊이지 않는 정치적 불안정과 초인플레이션이 몰고 온 경제적 궁핍, 그리고 결코 벗어나지 못한 민심 이반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걸어가야 했다.

결과: 극단으로 치닫은 공화국의 종언

패전의 산물로 태어난 바이마르 공화국은 출범과 동시에 좌파 노동자 봉기와 우파 민족주의의 부상 사이에서 찢겨 나갔다. 정치적 우유부단함은 좌우 양극화를 부채질했고, 공화국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단죄당하다시피 했다. 결국 이 체제는 극단 세력의 배경판이 되어 강력한 독재 권력의 등장을 부추겼으며, 1933년 3월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막을 내리고 제3제국이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