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월 6일, 핀란드 우티(Utti) 상공은 소련 폭격기의 작전에 유리한 기상 조건을 보였다. 고도 약 300m부터 두터운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소련이라는 거대 국가의 불필요한 침공을 받고 한 달 넘게 싸워온 작은 나라 핀란드는, 그때까지도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92% 명중률의 저격수
요르마 사르반토(Jorma Sarvanto)는 1912년 핀란드 투르쿠에서 태어났다. 예비역 조종사 과정을 수료한 뒤 1937년 공군에 입대했고, 잠시 폭격기 부대에서 복무한 후 제24전투비행대대에 배치되어 네덜란드산 포커 D.XXI(Fokker D.XXI) 전투기를 몰았다. 특히 그는 사격 훈련에서 무려 92%의 명중률을 기록할 만큼 뛰어난 저격 실력을 자랑했다.
사르반토는 1939년 12월 23일 소련 투폴레프 SB 폭격기 2대를 격추하며 첫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은 1940년 1월 6일의 전투였다.
홀로 맞선 적 폭격기 편대
"소련 폭격기 8대가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소벨리우스 중위가 그중 1대를 격추했습니다. 소련기는 임무를 마치고 같은 경로로 귀환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회상한 사르반토는 윙맨 기체가 고장으로 이륙하지 못하자 홀로 소련군과 맞서기 위해 출격했다.
"갑자기 편대 비행을 하는 폭격기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혼자였고, 그들보다 수백 미터 아래에서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불과 200~300m였지만 적의 공격은 받지 않았습니다."
사각지대를 파고든 역습
그는 고도 2,000m에서 적기 뒤 600m 거리를 유지하며 상승한 뒤, 간격을 500m까지 좁혔다. 소련기들은 서로 짧은 간격을 두고 계단식 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편대 맨 뒤 기체의 수직 꼬리날개가 만들어내는 사각지대를 이용해 접근했습니다. 소련 조종사들은 태평하게 날고 있었죠. 200m 거리에서 사격을 개시해 첫 기체를 명중시켰습니다. 곧바로 다음 기체로 선회했고, 짧은 점사 한 번으로 그 기체의 기관총이 침묵했습니다. 이어 이미 피격당한 기체의 기관총을 100m 거리에서 다시 무력화했고, 두 차례의 짧은 점사로 엔진에 불을 붙였습니다."
사르반토는 먼저 폭격기 후방 기관총탑의 기관총들을 제압한 뒤 엔진을 집중 공격하는 방식으로 이 과정을 반복했다. "갑자기 한 대의 폭격기가 불타며 지면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짧은 점사만 가했습니다. 확실히 명중시킬 수 없다면 사격하지 않았죠. 50m 이내 거리에서 날던 적기를 맞히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12시 10분,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대량 격추
"여섯 번째 폭격기가 가장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일곱 번째 기체의 등쪽 기관총을 무력화한 뒤 여섯 번째 기체를 공격했습니다. 주익 기관총의 탄약이 떨어져 동체 기관총으로 사격해 격추했습니다. 적기가 불붙으며 추락하기 시작하자 일곱 번째 기체로 선회했지만, 이번에는 탄약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시각은 12시 10분. 핀란드 에이스가 적 폭격기 6대를 모두 격추하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손상을 입은 일곱 번째 기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의 손에 격추되었다.
전투가 끝난 뒤 기체에서 내린 사르반토가 확인한 포커 D.XXI FR-97에는 적탄 흔적이 무려 23개나 박혀 있었다. 그가 격추한 소련 폭격기는 모두 DB-3형으로, 자기 밀봉식 연료 탱크가 없었고 기관총에도 장갑 보호가 되어 있지 않았다. 탑승했던 소련 승무원 19명 중 생존자는 단 2명뿐이었다.
스키를 단 전투기, 포커 D.XXI
참고로 포커 D.XXI는 고정 착륙장치 위에 스키를 장착하고 운용되었는데, 이는 본래부터 낮았던 최고 속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네덜란드산 포커는 기관총 4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프로펠러와 동기화된 2문이 동체 측면에, 나머지 2문이 주익에 장착되어 있었다.
겨울전쟁의 전설, 그 후
사르반토는 겨울전쟁에서 전부 폭격기인 13대의 격추 기록으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브루스터 F2A 버팔로 전투기를 몰며 폭격기 2대와 전투기 2대 등 소련기 4대를 추가로 격추했다. 그는 전쟁을 무사히 마치고 1960년까지 공군에 몸담았으며, 1963년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아내와 네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소련 DB-3 폭격기.
요르마 사르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