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세계는 서쪽 해안으로 국경을 확장시킨 초기 침입이라는 전주곡을 거친 뒤, 본격적인 그리스 식민 활동이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까지 약 3세기에 걸쳐 전개되었습니다.
기원전 8~6세기

식민 건설의 배경과 방식
이러한 확장 욕구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지중해 지역에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거주 가능한 공간은 점차 좁아졌습니다. 그 결과, 특히 경작지를 찾기 위해서라도 영토 확장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또한 내전에서 패배한 자들이 추방되면서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폴리스(도시 국가)의 번영을 위해 경제적 기회를 넓히고 무역로를 장악하려는 목적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모험을 택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리스인들은 항해술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식민지는 '딸 도시'라고 불리며, 모체 도시에 금속이나 밀 같은 곡물 등 필수 자원을 공급했습니다. 모체 도시와 식민지 사이에 '모녀 관계'가 성립하지만,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도시를 묶는 것은 도덕적 의무와 종교였습니다. 델포이 신탁소의 승인 없이는 식민시를 설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식민지는 정치·행정·경제 등 모든 면에서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주가 반드시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질서를 강요하거나 원주민의 전통을 지우려 하지 않았고, 단지 함께 살아갈 자리를 찾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준비와 신중한 결정 끝에 이루어진 식민화 사업은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갈리아 남부와 코르시카, 스페인 동부로 이어졌고, 다시 북부 이집트와 리비아, 마지막으로 흑해('폰투스 에우크시노스', 즉 '손님에게 우호적인 바다') 연안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해안을 따라 거점을 하나씩 세워가며, 그리스 세계는 점차 지중해 분지 전역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식민지화의 결과와 영향
식민지화는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헬라스(그리스) 문명이 국경을 넘어 널리 퍼질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새로운 상업 경로가 열리면서 전례 없는 경제적 활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아가 이 거대한 식민 물결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정복을 예고하는 선구적 현상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흐름을 이어받아 그리스 문화를 한반도가 아닌 인도까지 전파시키며 헬레니즘 시대의 막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