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피에르 클로드 파졸(Pierre-Claude Pajol): 나폴레옹 휘하의 용맹한 기병 지휘관

피에르 클로드 파졸(Pierre-Claude Pajol)은 1772년 2월 3일 프랑스 동부 도시 베장송(Besançon)에서 태어나 1844년 3월 20일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장군이자 정치가입니다. 원래 성은 '파조(Pajot)'였으나 이후 '파졸(Pajol)'로 불렸습니다.

혁명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본래 법학도였던 파졸은 프랑스 혁명 전쟁 발발 당시 소위 계급으로 군에 입대했고, 곧바로 용맹함을 드러냈습니다. 1792년 9월 30일에는 척탄병 부대의 선두에서 슈파이어(Speyer)를 공격하던 중 하복부에 총검으로 두 번 찔리는 부상을 입었으며, 1793년 4월 10일에는 마인츠(Mainz) 전투에서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이후 클레베르(Kléber) 장군의 부관으로 1796년 말까지 근무했으며, 그의 추천 덕분에 기병 대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파졸은 끊임없는 무공과 상흔을 쌓아갔지만, 당시 많은 기병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진급 속도는 더디었습니다. 그 결과 1807년 3월에야 비로소 준장에 올랐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의 주요 전투

라살(Lasalle) 사단 소속으로 활동하던 파졸은 구트슈타트(Guttstadt)와 하일스베르크(Heilsberg) 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습니다. 1808년에는 제국 남작(Baron of the Empire)에 서임되었고, 이듬해인 1809년 전역에 참전하여 에크뮐(Eckmühl)과 바그람(Wagram) 등 유명한 전투에서 싸웠습니다.

대육군(Grande Armée)과 함께한 러시아 원정에서도 그의 이름은 빛났습니다. 파졸은 코브노(Kovno)와 빌나(Vilna)를 점령했고, 모스크바 강(Moskva)에서 기병 돌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1812년 9월 9일 무아쟁(Mojaisk)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물러났습니다.

백작 서임과 1814~1815년의 마지막 전장

1813년 작센(Saxony) 여름 전역에 건강을 회복하고 복귀한 파졸은 같은 해 10월 16일 라이프치히 인근의 바하우(Wachau) 전투에서 또다시 중상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뒤 제국 백작(Count of the Empire)으로 승작되었으며, 1814년 2월 18일에는 몽트로(Montereau)를 함락하는 공을 세우며 그마저도 부상을 치르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백일천하(百日天下) 기간이었던 1815년 6월 18일, 파졸은 와브르(Wavre)에서 생애 마지막 돌격을 감행하여 프랑스군의 후퇴를 엄호했습니다.

혁명가로서의 삶과 말년

왕정복고(復古)에 대해 매우 반감을 가졌던 파졸은 1830년 7월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이후 집권한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국왕은 그의 공헌에 대한 보답으로 파리 주지사(Governor of Paris) 겸 프랑스 귀족원 의원(peer of France)에 임명했습니다.

파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Arc de Triomphe)에 새겨져 있으며, 그의 용맹한 일대기는 나폴레옹 전쟁사에서 기병 지휘관의 전형으로 회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