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레콩키스타: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은 700년의 재정복 전쟁

개요

  • 711년 과달레테 전투는 무슬림 세력이 히스파니아(오늘날 스페인) 대부분을 정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스페인 북부에 해당하는 아스투리아 왕국만이 기독교 세력으로 남았습니다.
  • 샤를마뉴가 8세기 말 카탈루냐를 탈환하고 기독교 세력이 스페인에 반복적으로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는 교황 우르바노 2세의 지원 속에 11세기 말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이 무렵, 수백 년간의 지배 끝에 무어인의 코르도바 칼리파국은 수많은 분열된 왕국들, 이른바 '타이파' 국가들로 붕괴한 반면, 기독교 왕국들은 힘을 합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십자군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레콩키스타는 동맹 관계의 변화와 내부 전쟁으로 좌절을 거듭한, 산발적인 군사 행동으로 이루어진 길고 느린 재정복 전쟁이었습니다.

11세기 ~ 15세기

레콩키스타: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은 700년의 재정복 전쟁

주요 인물

우르바노 2세
페르난도 1세
알렉산드로 2세

전개 과정

8세기 내내 기독교 세력의 약탈과 공격이 이어졌으며, 세기 말 샤를마뉴가 카탈루냐를 장악하면서 그 흐름은 한층 강해졌습니다.

9세기 말에는 아스투리아의 알폰소 대왕이 재정복을 추진했으나, 아스투리아가 분할되면서 카스티야와 나바라가 갈라져 나오는 바람에 진전이 더뎠습니다.

11세기에는 코르도바 칼리파국의 분열을 틈타 나바라와 카스티야의 국왕들이 재정복을 시도했지만, 고립된 상태에서 다른 기독교 왕국들과의 정치적 경쟁에 휘말려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1006년 토라 전투는 재정복의 서막을 연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11세기에 코르도바 칼리파국이 붕괴하면서 기독교 국가들의 연합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1037년 페르난도 1세는 갈리시아와 카스티야를 통일하고 나바라 왕국과 동맹을 맺어 진정한 의미의 재정복을 준비했습니다. 이는 1063년 교황 알렉산드로 2세가 면죄부를 약속하면서 본격화되었고, 20년 후에는 오늘날 스페인 영토의 절반 가까이가 기독교 세력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 세기 말에는 톨레도 왕국과 안달루시아가 함락되었고, 이에 맞서 무어 측의 종교적 열정 또한 고조되었습니다. 국면은 1212년 새로운 십자군이 선포되고 스페인 기독교 왕국들의 연합이 강화된 가운데 벌어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기독교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결정적으로 기울었습니다.

남방이 열리자 포르투갈 역시 재정복에 나섰고, 1229년 마요르카와 발레아레스 제도가 함락되면서 무어인은 바다로 통하는 발판을 잃고 몰락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이후 그라나다 왕국만이 남아 두 세기를 더 존속했습니다. 스페인 왕국들은 정복보다 내정 발전과 무역에 주력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1492년 카스티야 왕국이 그라나다를 정복하며 레콩키스타는 막을 내렸습니다.

영향과 결과

  • 레콩키스타는 전쟁에 익숙한 스페인 사회를 만들었고, 때로는 광신주의에 이를 정도로 종교적 감정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강한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지역 특수주의 또한 함께 강화시켰습니다.
  • 15세기 말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이른바 '가톨릭 왕' 부부의 결혼을 통해 스페인은 비로소 통일을 이루게 되었으며, 이는 16만 명이 넘는 세파르디 유대인의 스페인 추방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