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이후 유럽 연합(EU)은 눈부시게 확대되었다. 1990년 13개 회원국에 불과했던 EU는 오늘날 27개국으로 성장했다. 1995년에는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이 가입했고, 2004년에는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10개국이, 2007년에는 추가로 2개국이 합류하며 대확장을 이루었다.
이처럼 많은 신규 회원국을 흡수하면서도 여전히 통치 가능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EU는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 이후 제도 개혁을 거듭해 왔다.
- 암스테르담 조약(1997년, 1999년 5월 발효): 3개 축 구조를 유지하면서 자유·안보·정의의 영역 설립을 추진했으며, 일부 국가들이 원할 경우 더 빠르게 통합을 진전시킬 수 있는 '강화된 협력' 원칙을 도입했다.
- 기본권 헌장(2000년): EU에 자체적인 기본권 보호 체계를 마련했다.
- 니스 조약(2001년): 기구 내 의사결정 방식을 개편하고 '이중 다수결(qualified double majority)' 체계를 확립했다.
유럽법을 통일하고 유럽 통합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이끄는 '유럽의 미래에 관한 협약' 작업반에 유럽 헌법 초안 작성이 위임되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2005년 국민투표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반대로 좌초되었다. 이러한 실패는 일부 국가들이 연방적 성격의 권위로 너무 급격히 나아가는 것과 그에 따른 주권 상실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유럽 헌법 조약의 실패에서 얻은 핵심 교훈은, 정치적 통합은 오직 극도의 신중함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리스본 조약의 체결
2007년 12월 13일, 리스본 조약이 공식 서명되었다.
주요 인물
-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Valéry Giscard d'Estaing)
- 니콜라 사르코지 (Nicolas Sarkozy)
- 헤르만 반 롬푸이 (Herman Van Rompuy)
- 캐서린 애슈턴 (Catherine Ashton)
추진 절차
리스본 조약은 2007년 6월 유럽 이사회에서 소집된 정부간 회의(IGC)를 통해 작성되었다. 당시 정치적 협상은 매우 까다로웠는데,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반대 여론을 수용하면서도 통합의 흐름을 이어갈 방안을 동시에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조약은 이전 조약의 실패를 만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미니 조약' 또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안한 '단순화된 조약' 등 여러 명칭이 거론되었다.
조약은 최종적으로 2007년 12월 13일 서명되었고, 발효는 2009년 1월 1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발효는 2009년 12월 1일에야 이루어졌다.
주요 내용
- EU에 법적 지위(법인격)를 부여하고, 기본권 헌장에 조약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부여한다(원칙이 준수되지 않을 경우 제재가 가능).
- 기존 문서를 유럽 연합 조약과 유럽 연합 기능 조약 두 개의 텍스트로 재편한다.
- 마스트리흐트 조약에서 확립된 '3개 축' 구조를 폐지한다.
- 유럽 이사회 상임 의장직과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직을 신설한다('외무 장관'이라는 명칭은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음).
- 보조성 원칙(subsidiarity)을 통해 국가 의회의 역할을 강화한다.
- 연합과 회원국 간 권한 배분을 명확히 하고, 시민 발안권(시민 이니셔티브) 제도를 도입한다.
결과와 의의
- 실제로 리스본 조약은 헌법 초안에 담겼던 대부분의 핵심 진전(기구 조직, 의사결정 절차 등)을 한층 신중한 방식으로 수용했다.
- 동시에 주권을 EU에 양도하기를 꺼리는 일부 국가들의 우려를 조율하기 위해 예비 조항과 안전장치를 도입했다. 연방주의적 색채가 짙은 개념과 상징들은 교체되었는데, '헌법'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주권의 상징들(유럽 찬가, 유럽기 등 — 실제로는 계속 사용됨)이 조약 본문에서 삭제되었으며, 회원국에 대한 연합 법령의 우선성 규정도 명문화되지 않았다.
- 이러한 입안상의 신중함 덕분에, 기구 구조를 보다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재정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회원국 간 예산 정책 조율을 강화하기 위해 리스본 조약에 상당한 수정이 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