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1차 십자군 이전의 예루살렘, 혼돈과 격변의 시대

제1차 십자군 이전의 예루살렘, 혼돈과 격변의 시대

오늘날의 예루살렘 전경, 사진 앞쪽으로 구시가지가 보입니다.

파티마 왕조의 지배와 알하킴의 폭정

10세기 말, 무슬림들이 '알쿠드스(성스러운 도시)'라고 부르던 예루살렘은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파티마 왕조는 이곳에 시아파 칼리프 체제를 세우며 도시를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996년 즉위한 칼리프 알하킴은 광신적이고 잔혹한 통치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는 1009년부터 기독교도 배척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그 결과 성묘 교회가 완전히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유대교 회당마저 모욕을 당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나아가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 선포하고, 자신의 신격화를 거부하는 무슬림들까지 탄압했습니다.

새로운 기독교 구역의 탄생

1021년 알하킴이 사망했지만 예루살렘에 찾아온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베두인족의 반란이 지역 전체를 뒤흔들었고, 1033년에는 강력한 지진으로 알아크사 모스크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코스는 성벽 복원을 약속한 파티마 칼리프와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황제는 성묘 교회 재건에 기여하는 대신, 자신이 후원하는 구역에는 오직 기독교도만 거주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온 산 위에 세워진 교회를 중심으로, 아르메니아계 기독교도들이 매입한 토지를 기반으로 한 또 하나의 기독교 구역이 예루살렘에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셀주크의 침공과 십자군의 도래

1071년, 시아파였던 이집트 세력은 성지에 대한 지배권을 수니파 튀르크 계열의 셀주크 제국에 내주게 됩니다. 셀주크는 1073년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1098년 파티마 군대가 다시 반격에 나섰고, 1년 반에 걸친 끈질긴 공성전 끝에 도시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은 처참한 피바다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단 10개월 후, 십자군이 예루살렘 성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도시의 운명은 다시금 거대한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