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오스트리아의 안, 프랑스 왕정을 지킨 위대한 섭정

오스트리아의 안, 프랑스 왕정을 지킨 위대한 섭정

프랑스를 직접 통치한 여성은 많지 않았습니다. 구체제(Ancien Régime)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살리카법에 따라 여성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이 정치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은, 국왕이 너무 어려서 친정(親政)을 수행할 수 없는 과도기, 바로 '섭정'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섭정 기간 동안 모후들은 어린 아들의 취약함을 대신하여 왕국의 실권을 쥘 수 있었습니다.

섭정 시기, 왕정의 가장 위험한 순간

문제는 이러한 섭정기가 역설적으로 왕정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국왕의 권력이 공백 상태에 빠지면, 억눌려 있던 왕국 귀족들의 야망이 일제히 드러나기 마련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전으로 번져 왕국의 평화 자체를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16세기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종교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 아들들의 왕위를 지켜야 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17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안(Anne d'Autriche)이 프롱드의 난이라 불리는 대혼란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 정치 권력의 행사에는 단호함과 유연함 사이의 균형, 즉 암초 사이를 능숙하게 항해할 수 있는 뛰어난 정치적 감각이 요구되었습니다.

모든 역경을 이겨낸 섭정, 그리고 마자랭과의 동맹

루이 13세는 생전에 스페인 출신의 아내 안을 깊이 의심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안은 만인의 예상을 뚫고 섭정의 자리에 올라 역경을 하나씩 극복하며 승리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의 추기경 마자랭(Mazarin)을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로 삼았고, 마자랭은 탁월한 정치의 달인임을 입증했습니다.

역사의 이 놀라운 순간에 두 명의 외국인이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프랑스 왕관의 이익을 수호했습니다. 이 신부 같은 조력자와 어머니가 없었다면, '기적의 아이'라 불린 루이 디외도네(Louis Dieudonné), 즉 루이 14세는 후세에 '루이 14세의 시대'로 기억될 만큼 길고 위대한 통치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