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오텡(Autun)에서 발굴된 초기 기독교 네크로폴리스, 갈리아 기독교의 여명을 밝히다

오텡(Autun)에서 발굴된 초기 기독교 네크로폴리스, 갈리아 기독교의 여명을 밝히다

프랑스 모르방(Morvan) 지역 오텡에서 진행 중인 석관 발굴 작업 ⓒ INRAP / SERVICE DE PRESSE

프랑스 손에루아르(Saône-et-Loire) 주의 오텡(Autun), 고대 로마 시대의 이름인 아우구스토두눔(Augustodunum)은 갈리아 지역에서 기독교가 태동하던 시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를 간직한 도시다.

1839년, 초기 기독교 교회였던 생피에르레스트리에(Saint-Pierre-l'Estrier) 인근에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언급이 발견되었다. 바로 4세기 대리석 판에 그리스어로 새겨진 '펙토리오스 비문(Inscription de Pectorios)'이다.

그리고 오늘날 같은 지역에서, 개인 주택 건설에 앞서 고고학자들은 1,346㎡ 규모의 부지를 조사하여 무덤 200기와 영묘 6기로 이루어진 광대한 네크로폴리스(고대 묘지)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중 일부 영묘는 18세기까지도 그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중 하나에는 오텡의 초대 주교 아마토르(Amator)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어느 영묘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지하에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고대와 중세를 잇는 전환점의 묘지

이 네크로폴리스는 로마 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고대와 중세 사이, 그리고 기독교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에 자리하고 있다. 관(棺)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데, 일부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일부는 납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납관은 프랑스 북부 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다. 또한 일부 관에는 해석이 쉽지 않은 십자형 문양이 새겨져 있어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무덤의 크기는 50cm에서 1.80m까지 다양하며, 함께 매장된 부장품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고인들이 검소하게 안장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대와 실망

"역사 기록을 통해 이곳에 기독교 유력 인물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들의 무덤과 이교도의 무덤을 구별해낼 수 없습니다." 국립 예방 고고학 연구소(Inrap)의 고고학자들이 설명했다.

발굴 작업 막바지에는 1,500년간 완전히 밀봉된 것으로 여겨졌던 석관이 마침내 열렸다. 연구진은 이 석관에서 보존 상태가 좋은 유골을 발견하기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구의 골격만 담겨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흙이 스며들어 미세한 진흙층을 형성한 것인데, 환경 분석을 통해 이 진흙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창건한 오텡은 행정·경제·정치의 중심지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도시였다. 특히 이곳의 웅변학교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학생들을 끌어모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으며, 고대에는 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발굴이 끝난 후 네크로폴리스는 다시 흙으로 덮여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이곳에 잠들었던 사람들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실상을 밝히려면 실험실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