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바이킹의 기독교화, 세례로 완성되지 않은 긴 내면의 여정

바이킹의 기독교화, 세례로 완성되지 않은 긴 내면의 여정

911년 체결된 생클레르쉬르에프트 조약(Saint-Clair-sur-Epte)에는 기독교 개종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프랑크 측 인물인 프랑콩(Francon) 대주교에 따르면 개종은야말로 성공의 담보였습니다. 바이킹에게 기독교 개종은 프랑크 왕국과의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받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연대기 작가 뒤도(Dudon)는 관련 사실을 간략하게 서술하면서, 마치 개종이 빠르고 어려움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료를 통해 우리는 이 개종이 실제로는 길고 섬세한 과정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912~914년경 루앙(Rouen) 대주교 기(Gui)는 세례 의식이 새 신자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바이킹의 진정한 개종을 이끌어내지 못한 그는 랭스(Reims) 대주교 에르베(Hervé)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기가 보낸 편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에르베가 이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교황 요한 10세와 먼저 상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에르베의 회신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느린 내면의 여정

에르베의 회신은 충격적인 현실을 전해줍니다. 세례를 받은 바이킹들은 여전히 조상의 제의를 지키고, 신들에게 동물을 제물로 바쳤으며, 심지어 기독교인을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을 기독교 신앙에 더 부합하는 삶으로 되돌리기 위해 루앙의 성직자들은 재세례까지 집행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회신에서 에르베는 먼저 콘스탄티누스 1세와 클로비스 1세 같은 위대한 개종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세례는 이미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느리고 긴 내면의 여정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불과함을 일깨워 줍니다.

따라서 이교적 행위로의 회귀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할 모독이 아니라, 개종이라는 깊은 내면의 변화 과정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해할 만한 실패로 보아야 했습니다. 새로 개종한 이들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르베는 편지의 끝에서 '먼저 개종해야 하는 것은 프랑크인'이라고 선언하며, 세례 의식은 긴 여정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