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마침내 발견된 니콜라스 롤랭의 무덤

마침내 발견된 니콜라스 롤랭의 무덤

얀 반 에이크, <총리 니콜라스 롤랭의 성모>(부분), 1435년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위키미디어 커먼즈


보뉴 호스피스(Hospices de Beaune)의 설립자 니콜라스 롤랭의 무덤이 프랑스 손에루아르(Saône-et-Loire) 지역 오툉(Autun) 대성당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발굴 현장은 프랑스 혁명 당시 파괴된 교회의 지하로, 니콜라스 롤랭의 옛 저택을 개조한 롤랭 박물관 확장 공사의 일환으로 조사를 진행하던 고고학자들은 그곳에서 1793년에 해체된 여러 매장 시설을 확인했습니다.


조사팀은 이곳이 바로 후원자의 무덤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옛 교회 성가대석에 묻힌 무덤들의 배치가 니콜라스 롤랭의 무덤 위치를 표시해 둔 18세기 도면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유해 사이에서 발견된 기사용 박차, 즉 그의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까지 확인되면서 정체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스 롤랭은 1376년경 보뉴에서 태어난 법률가 출신 인물로,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장(Jean sans Peur)과 그의 아들 선정공 필리프(Philippe le Bon)를 섬기며 약 40년간 부르고뉴 공국의 대법관으로 재직했습니다. 당시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왕국에 필적할 만큼 강력한 세력이었습니다. 뛰어난 예술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아들 장(Jean)과 함께 아비뇽 셀레스탱 수도원의 예배당을 건립했으며, 세 번째 아내 기곤 드 살랭(Guigone de Salins)과 함께 1443년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 '궁전'이라 불릴 만한 보뉴 호스피스를 설립했습니다.


이해관계가 얽힌 후원


다만 그의 선행이 완전히 무심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대법관이 직접 남긴 글이 이를 말해 줍니다. "나는 보뉴 마을에 가난한 병자들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고, 회수할 수 없는 재산을 하사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는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에게 <총리 니콜라스 롤랭의 성모>를 의뢰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기도하는 롤랭이 성모 마리아와 마주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1462년 고향 땅에 안장되었습니다.


이번 발견은 오툉의 역사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곳에서는 고고학자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는데, 올여름에는 프랑스 최초의 기독교 묘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고대 네크로폴리스가 발굴되어 230기가 넘는 무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