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1560년대,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는 지중해에서의 작전을 위해 신형 갤리선 50척의 건조를 명령했습니다. 그중 가장 거대한 배가 바로 레알(Real)로, 1568년 바르셀로나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습니다.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이 이름처럼 레알은 함대의 자존심이었지만,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메시나로 귀항하던 중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일반 갤리선과 다른 왕실 기함의 규모
당시 일반적인 군용 갤리선에는 선원, 목수, 심지어 의사를 포함한 20~30명의 정규 승무원 외에도 약 100명의 전투 병력이 탑승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후안(Don Juan de Austria)이 지휘하는 왕실 기함 레알은 무려 300명의 병사와 100명의 자원 기사들을 실었다고 전해집니다. 단순한 전투선을 넘어 하나의 부동 요새에 가까운 규모였던 셈입니다.
236명의 노젓꾼과 지옥 같은 항해
일반 갤리선이 좌우 두 줄로 총 48개의 노를 사용했다면, 레알은 59개의 노를 장착해 훨씬 강력한 추진력을 자랑했습니다. 노 하나당 노젓꾼 네 명이 함께 젓기 때문에 총 236명의 노젓꾼, 즉 '추스마(chusma)'가 한 배를 움직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사슬로 벤치에 묶인 갤리 노예들로,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하루 종일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더 참혹한 것은 전투 상황이었습니다. 적의 포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방어할 수단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대포와 독특한 전술
레알의 무장 또한 특징적이었습니다. 중포는 선수(船首)에 배치되었는데, 당시 함포는 회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조준 자체를 배의 방향 전환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는 곧 함장의 조종 실력이 곧 화력의 정확도로 직결된다는 의미였습니다. 함포 외에 나머지 구역에는 팔콘(falcon)과 같은 소형 이동식 포가 배치되어 중형 포탄을 발사하며 근접전을 지원했습니다.
400주년을 기념한 정교한 복원
레판토 해전 400주년을 맞아 바르셀로나 해양 박물관은 레알의 실물 크기 복제선을 제작했습니다. 방대한 사료와 문서를 면밀히 연구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공사만 무려 6년이 걸렸으며, 17명의 숙련된 조선 기술자가 참여했습니다. 특히 갤리선의 화려한 원래 장식도 세밀하게 재현되었는데, 후안이 지휘봉을 들었던 현측 갑판(쿼터덱)의 장식은 복원 작업의 백미로 꼽힙니다. 이 복제선은 오늘날까지 레판토 해전의 영광과 비참했던 노예 노젓꾼들의 삶을 동시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