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이(Cathay)는 중세 시대 유럽인들이 중국 북부를 가리키던 이름입니다. 이 단어는 10세기경 몽골 고원 남동쪽에서 세력을 형성한 반유목 민족 '거란(Khitay, Kitan)'에서 유래했습니다. 거란족은 만주와 중국 북부 일대를 정복한 뒤 약 200년간 해당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징기스칸(1227년 사망) 시대 이후 몽골인들은 중국 북부를 '키타이(Kitai)', 중국 남부를 '만기(Mangi)'라고 불렀습니다. 흥미롭게도 '키타이'는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어에서 중국을 뜻하는 말(Китай)로 남아 있습니다.
유럽에 전해진 카타이
카타이라는 이름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경위는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서였거나, 1246년과 1254년 몽골 제국의 옛 수도 카라코룸을 방문한 두 명의 프란체스코회 수사에 의해서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약 50년 뒤 중국을 직접 여행한 마르코 폴로(1254~1324)야말로 유럽 대중에게 카타이의 실제 모습을 각인시킨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묘사한 카타이는 당시 유럽보다 훨씬 정교하고 발달된 문화를 지닌 나라로 그려졌습니다.
신대륙 항해와 카타이 신화
14세기 몽골 세력이 몰락하면서 유럽과 중국의 직접적인 접촉은 끊겼지만, 카타이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오래 남았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존 캐벗은 자신들의 신대륙 항해가 결국 카타이에 도달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실제로 마르코 폴로의 저서를 소지하고 있던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착한 땅을 만기(Mangi), 즉 카타이와 인접한 지역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중국과 카타이의 동일성 입증
중국과 카타이가 사실상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575년 스페인 출신 아우구스티노회 수사 마르틴 데 라다(Martín de Rada)가 이 사실을 기록했으며, 1607년에는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마르코 폴로가 이용했던 중앙아시아 육로를 통해 중국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이를 확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