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다스 1세(Leonidas I)
기원전 491년부터 기원전 480년까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을 통치한 왕.
생애
레오니다스는 아기아드(Agiad) 왕가 출신으로, 아낙산드리다스 2세(Anaxandridas II)의 막내아들이며 형인 클레오메네스 1세(Cleomenes I)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형의 딸인 고르고(Gorgo)와 결혼했습니다.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하자, 기원전 481년 가을 코린토스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약 5,000명의 병력을 레오니다스의 지휘 아래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군은 약 25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었으며, 그리스 연합군의 목표는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켜 그리스 함대가 에우보이아 섬과 본토 사이 해협 너머로 안전하게 후퇴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피알테스(Ephialtes)라는 배신자가 페르시아군에게 레오니다스의 방어선을 우회할 수 있는 샛길을 알려주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이에 레오니다스는 대부분의 병력을 물려 보내고, 자신과 함께 싸울 300명의 동귀(스파르타 시민병)와 그들을 따르는 헤일로타이(속민), 그리고 테바이와 테스피아이 출신 의용병 약 700명만 남겼습니다. 영웅적인 저항 끝에 그는 부하들과 함께 페르시아 진영 깊숙이 돌진해 적진에 큰 혼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압도적인 수적 열세 앞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전사 후 그의 유해는 스파르타로 옮겨져 웅장한 무덤이 세워졌으며, 그를 기리는 '레오니다이아(Leonidaea)'라는 축제가 제정되었습니다.
피티아의 신탁
페르시아 전쟁 당시 델포이의 여사제 피티아가 내린 신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넓은 스파르타의 백성들이여,
네놈들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도시는 페르시아인들의 공격 아래 무너지거나,
무너지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혈통 위에서,
죽은 왕 하나를 두고 라케다이몬의 땅은 곡할 것이다.
그의 적수는 황소의 힘도 사자의 힘도 그를 막지 못하리니,
그가 오는 날, 그의 힘은 제우스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말하노니,
그는 먹잇감을 거두거나, 아니면 스스로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피티아의 신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