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레지나 전투(Bataille de la Bérézina)는 1812년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현재의 벨라루스에 위치한 베레지나 강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군과 쿠투조프, 비트겐슈타인, 치차고프가 이끄는 세 개의 러시아군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러시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진행된 이 전투는 나폴레옹 대육군(Grande Armée)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상황
6월 24일 니멘 강을 건너 러시아 영토에 진입한 지 다섯 달 만에 대육군은 후퇴를 시작했고, 마침내 광활하고 늪지대가 많은 베레지나 강 앞에 다다랐습니다. 러시아군은 이 자연 장애물을 활용해 나폴레옹 군을 차단하고 완전히 섬멸하려 했습니다.
러시아로부터의 퇴각은 극도로 열악한 조건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겨울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고 그 추위는 매우 혹독했습니다. 측면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군대가 위협하고, 배후에서는 쿠투조프의 군대가 추격해왔으며, 정면에는 치차고프의 러시아군이 전날부터 보리소프의 다리를 장악한 상태로 베레지나 강을 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1812년 11월 22일 아침, 대육군은 사방이 막힌 절망적인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기만 작전과 도하 준비
11월 23일, 러시아군이 보리소프에서 프랑스군을 기다리고 있자 나폴레옹은 양동 작전을 펼치기로 결심합니다. 보리소프 남쪽 약 15km 지점, 스튜디엔카 마을 맞은편에서 코르비노 장군이 이미 건널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해 두었던 것입니다.
작전의 성패는 스튜디엔카에서 두 개의 교량을 얼마나 신속하게 건설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에블레 장군이 지휘하는 공병들은 11월 26일부터 28일까지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 두 개의 임시교를 건설하고 유지했습니다. 세 개의 러시아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대육군은 26일 오후 1시 드디어 강을 건너기 시작합니다.
격렬한 방어전
밤사이 치차고프는 자신의 판단 착오를 깨닫지만 즉시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28일 오전 8시경, 치차고프와 비트겐슈타인, 쿠투조프의 선봉 부대가 마침내 공세에 나섭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군대와 마주한 빅토르 원수는 시간이 갈수록 증원되는 적군을 상대로 1만 명의 병력으로 스튜디엔카 고지를 하루 종일 사수했습니다. 푸르니에 휘하의 800명 기병대는 러시아 기병과 보병을 향해 거듭된 돌격을 감행하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도하가 끝나갈 무렵 밤이 어둠을 내리며 전투가 중단되었고, 빅토르는 이 틈을 타 우안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리 소각과 비참한 희생자들
대부분의 본대가 이미 베레지나 강을 건넌 후에도 수많은 낙오병들이 여전히 반대편 강가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에블레는 야영지 곳곳에 여러 차례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철수를 보호하기 위해 29일 새벽 다리를 폭파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늦게 도착하는 병사들에게 급박함을 각인시키기 위해 마차에 불을 질렀지만, 지칠대로 지친 낙오병 대부분은 날이 밝기를 기다리겠다며 이러한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시한을 최대한 미룬 끝에 두 개의 다리는 오전 8시 30분 불태워졌습니다. 베레지나 강 좌안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불타는 다리 위를 돌진하거나 헤엄쳐 강을 건너려던 사람들의 비참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빅토르 부대가 떠난 후 통로가 비었다는 것을 확인한 러시아 코사크 기병은 오전 9시 30분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대육군이 버리고 간 전리품을 확보하고 수많은 포로를 잡았습니다.
전술적 성공, 전략적 참화
대육군의 전투 부대, 참모부, 포병은 베레지나 강을 건너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분명한 군사적 성공이었지만, 약 3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포로라는 처참한 손실이라는 씁쓸한 대가를 치른 결과였습니다.
혁명 전쟁과 제정 시대 전쟁의 이 국면에 관한 주요 사료 중 하나는 로스톱신 장군(드 세귀르 백작부인의 아버지)의 회고록 『1812년 나폴레옹과 대육군의 역사(Histoire de Napoléon et de la Grande Armée pour l'année 1812)』로, 1824년에 출판되었습니다.
문학과 문화에 남긴 흔적
베레지나 강 도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발자크는 『고별(L'Adieu)』(1830)에서 베레지나 강 도하 당시 사랑하는 프랑스 병사와 헤어진 뒤 미쳐버린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군인 생활의 장면』 및 『철학 연구』에 수록).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1864)에서 19세기 한 러시아 가문의 서사시적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파란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베레지나(bérézina)'라는 단어는 이 전투 이후 프랑스어 회화 속에서 '대패배', '처참한 실패'를 뜻하는 동의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