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시아(Mercia)는 고대 영어 'Mierce(경계 지방의 사람들)'에서 이름을 딴,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통치 왕조 내부의 끊임없는 권력 다툼에도 불구하고, 머시아는 7세기 중반부터 9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잉글랜드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굳건히 유지했습니다.

변경에서 시작된 영토 확장
머시아의 원래 영토는 앵글로색슨 정착민들과 서쪽으로 밀려난 켈트족 사이에 위치한 변경 지방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스태퍼드셔, 더비셔, 노팅엄셔, 웨스트미들랜즈 북부, 그리고 워릭셔 일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후 머시아는 후위카(Hwicce) 지역(웨스트미들랜즈의 나머지 지역, 헤리퍼드셔·우스터셔 동부, 글로스터셔)을 흡수했고, 나아가 체셔, 슬롭셔, 헤리퍼드셔·우스터셔 서부로도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그 결과 머시아는 웨일스 국경과 험버강, 이스트앵글리아, 템스강 사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펜다: 최초의 위대한 머시아 왕
기록에 남은 최초의 머시아 왕은 펜다(Penda, 655년 몰)입니다. 그는 잉글랜드 남부 전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머시아 패권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의 아들들인 울프헤어(Wulfhere)와 애설레드(Aethelred)는 아버지의 무용을 계승하며 머시아의 전사(戰士)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절정기: 애설발드와 오파 대왕
런던을 손에 넣은 애설발드(Aethelbald, 재위 716~757)와 그의 사촌 오파(Offa, 재위 757~796)의 치세에 머시아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오파는 험버강에서 잉글리시 해협에 이르는 전국을 사실상 하나의 국가로 통합했으며, 서식스, 이스트앵글리아, 에식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켄트의 소국 왕들을 자신의 신하로 삼았습니다.
오파의 통치는 잉글랜드 정치 통일을 향한 당시까지의 가장 큰 진전이었습니다. 그의 위상은 대륙 군주들, 특히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와의 외교 관계에서도 드러나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했습니다. 또한 오파는 웨일스 국경을 따라 거대한 토목 공사인 '오파 방벽(Offa's Dyke)'을 축조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쇠퇴와 웨식스로의 귀속
오파가 죽은 뒤 머시아는 급부상하는 웨식스(Wessex) 왕국 앞에서 서서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특히 9세기 말 바이킹(덴마크인)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877년부터는 잉글랜드인 지역과 덴마크인 지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10세기 초, 장로 에드워드(Edward the Elder)가 덴마크령 지역을 재정복하면서 머시아는 독립 왕국으로서의 명맥을 잃게 됩니다. 이후 머시아는 잉글랜드 전체의 왕이 된 웨식스 왕들에게 복속되어, 그들이 파견한 지방 귀족 '얼더먼(ealdormen)'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