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3.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 박해와 처형

13.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 박해와 처형

예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권력자들을 두려워한 추종자들에게 외면당했지만, 예수가 돌아가신 직후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주요 제자들은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유대인과 비유대인에게 각자 독립적으로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여러 형태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열두 제자는 각각 후계자를 임명했는데, 이들이 당시에 '주교(Bishop)'라 불린 인물들입니다. 그 시대에 성 바울루스, 즉 성 바울이라 불리는 기독교 성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은 아니었지만, 유대 세계에서 '복음(Gospel)'을 가장 성공적으로 전파한 인물로 인정받았습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좋은 소식을 뜻하며, 그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할 것이다'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성 바울이 전파한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과 상당히 다르다고 봅니다. 성 바울은 유능하고 학식 있는 인물이었지만, 예수처럼 사회 질서에 맞서는 반항자는 아니었습니다. 즉, 바울은 유대인들의 사회적 전통과 신앙을 비판하지 않고 오직 신학적 가르침 전파에만 집중했습니다.

바울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고, 기독교 전파 사업은 빠르게 진전되었습니다. 이윽고 기독교는 예루살렘을 넘어 로마까지 도달했습니다. 로마에 교회를 세운 이는 예수의 수석 제자인 성 베드로였으며, 그는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을 그곳의 주교로 임명했습니다. 다만 로마에서 실제로 전해진 기독교 교리는 성 바울의 것이었습니다.

성경의 탄생

유대인들에게는 타낙(Tanakh), 탈무드(Talmud), 미드라쉬(Midrash)라 불리는 세 가지 주요 종교 경전이 있습니다. 타낙은 기원전 약 1300년경에 편찬되었으며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모세가 저술했습니다. 성경의 기초가 된 것은 바로 '구약(Old Testament)', 즉 옛 언약이라 불리는 타낙입니다. 구약은 '탈무드' 또는 '토라'라고도 불립니다. 한편 성경의 신약(New Testament)은 서기 50년부터 100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복음서'라고도 합니다.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어는 '아람어'와 '그리스어'였으며, 예수의 네 제자인 마태오, 누가, 요한, 마르코가 집필했습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이 '신약'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간주되며, 신약은 예수의 생애·가르침과 제자들의 전도 활동을 담은 성경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신약은 총 27권으로 구성되며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복음서 4권, (2) 행전 1권, (3) 서간서 22권입니다. 22권의 서간서 중 14권은 바울의 서신, 7권은 공동 서간, 1권은 계시록에 해당합니다. 이 27권은 기독교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서기 400년에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이를 '불가타(Vulgata)'라 하며 이 번역본은 수세기 동안 표준 성경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참고로 가톨릭 성경은 구약 46권과 신약 27권, 개신교 성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정교회 성경은 구약 4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 복음(Gospel)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소식을 의미하며,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담은 서사입니다. 성경의 여러 번역본에서는 '좋은 소식(Good News)'으로도 옮겨지는데, 이는 그리스어 '에우안겔리온(euangelion)'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복음 서사의 핵심은 예수의 제자 마태오, 마르코, 누가, 요한이 쓴 초기 네 복음서에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한 사형

로마인들은 처음에는 기독교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를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점차 기독교인들의 자신감은 커져갔고, 그들은 다른 모든 신앙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로마 신들의 신상 숭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의 조각상에 대한 경배마저 거부한 것입니다.

결국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싸움을 일으키는 편협한 무리로 간주하게 되었고, 황제의 조각상 앞에 무릎 꿇지 않는 행위는 반역죄로 처벌되어 수많은 기독교인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또한 오락을 위한 인수(人獸) 결투에도 반대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로마 민족의 수천 년 된 전통이었고, 이미 로마인들에게는 종교와도 같은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 선교사들은 국가와 백성 양측으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재산은 몰수당했으며, 많은 기독교인이 굶주린 사자 앞에 던져졌습니다.

안드로클레스와 사자

로마 기독교 문헌에는 한 젊은 수사와 사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유명한 희곡 『안드로클레스와 사자』에서 이를 감동적으로 재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로마 문명의 단면을 조명하며, 그리스도 이후 첫 세 세기 동안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겪은 박해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안드로클레스라는 이름의 기독교 수사가 어느 날 숲에서 앞다리에 가시가 박혀 절뚝거리며 고통에 신음하는 사자를 발견했습니다. 안드로클레스는 처음에는 사자를 두려워했지만, 사자가 계속해서 발을 핥으며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는 용기를 내어 가시를 빼주었습니다.

얼마 후 그 수사는 '기독교도'라는 혐의로 로마 병사들에게 붙잡혀 노예 무리와 함께 로마로 끌려갔습니다. 로마 황제는 봉신들과 함께 관람석에 앉아 노예들의 결투를 구경했습니다. 결투장에서 노예들의 몸에서 피가 흘러넘쳤고, 살아 있는 동안 팔다리가 잘려 나갔습니다.

로마 황제와 시민들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노예들을 보며 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싸움을 거부하는 노예는 굶주린 사자가 풀려난 투기장에 내몰렸고, 로마인들은 사자가 노예를 덮쳐 찢어먹는 광경을 구경거리로 삼았습니다. 기독교 수사 안드로클레스도 같은 콜로세움으로 끌려와 다른 사람과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른 몸의 안드로클레스는 싸움을 거부했고, 결국 굶주린 사자 앞으로 밀려 들어갔습니다. 우리에 갇혀 있던 사자는 으르렁거리며 투기장으로 뛰어들었지만, 그 수사를 알아보자마자 엎드려 앞발을 수사에게 내밀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황제는 크게 놀라 안드로클레스와 사자를 모두 풀어주었고, 수사는 그 사자와 함께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신앙을 위한 순교

기독교 선교사들은 로마 통치자들이 자행하는 이러한 만행을 신앙을 위해 치러야 할 희생으로 여겼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참을성 있는 신앙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은 로마인들은 점차 기독교인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수많은 로마인들이 고대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