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스와 크로마티(Ross and Cromarty): 스코틀랜드 북부의 역사적 지역

로스와 크로마티란?

로스와 크로마티(Ross and Cromarty)는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지역으로, 동쪽의 북해에서 서쪽의 대서양까지 나라를 가로질러 뻗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아우터헤브리데스 제도에 속한 루이스 섬(루이스앤해리스 섬의 일부)까지 포함하는 광활한 영역입니다.

로스와 크로마티(Ross and Cromarty): 스코틀랜드 북부의 역사적 지역

행정 구역의 변천

로스와 크로마티는 역사적으로 로스셔(Ross-shire)와 크로마티셔(Cromartyshire)라는 두 개의 카운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로스셔는 두 카운티 중 더 넓은 지역으로, 루이스 섬 전체와 스코틀랜드 본토의 로스 지역 대부분을 포함했습니다. 로스는 다시 대서양 연안의 웨스터 로스(Wester Ross)와 북해 연안의 이스터 로스(Easter Ross)라는 전통 지역으로 나뉩니다.

크로마티셔는 로스셔 안에 흩어진 여러 월경지 형태로 존재했는데, 크로마티 마을 주변 지역과 서덜랜드(Sutherland)와 접경한 북서쪽의 더 넓은 지역(울라풀(Ullapool) 마을 포함)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1889년 로스셔와 크로마티셔가 합병하여 로스와 크로마티 카운티가 되었고, 1975년에는 루이스 섬이 행정상 분리되었습니다. 이후 1996년 하이랜드 의회(Highland Council)가 이 지역의 모든 지방 정부 기능을 인수하면서 로스와 크로마티는 지방 자치 단체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현재 본토 부분과 본토 인근의 작은 섬들은 모두 하이랜드 의회 관할에 속하며, 루이스 섬은 웨스턴아일즈(Western Isles) 의회 구역에 포함됩니다.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이 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선돌(스톤 서클)과 돌무더기 무덤(카른)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기원 후 첫 몇 세기 동안 이 지역은 픽트족(Picts)의 영토였으며, 6~7세기에 성 콜룸바의 추종자들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 후 약 3세기 동안은 노르드인 지배자들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12세기에는 스코틀랜드 왕 다비드 1세(David I)가 현지 게일족 족장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이스터 로스를 플레밍인, 잉글랜드인, 앵글로노르만인 등으로 식민화하였고, 이때 로스 카운티가 탄생했습니다. 한편 게일계 '섬들의 영주(Lords of the Isles)'는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대서양 연안을 통치했으며, 이후 스코틀랜드 왕들이 이 지역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클랜의 시대와 근대사

16세기에는 로스씨, 먼로씨, 매클라우드씨, 맥도널드씨, 매켄지씨 등 여러 클랜이 이 지역을 차지하며 살았습니다. 이들 봉건 클랜 간의 산발적인 충돌 외에 이 지역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는 두 차례입니다. 1650년 인버캐런(Invercarron) 전투에서는 아치볼드 스트래천 대령이 이끄는 의회군이 제임스 그레이엄 몬트로즈의 왕당파 군대를 격파했고, 1719년 글렌실(Glenshiel) 전투에서는 조지프 와이트먼 장군이 시포스 백작이 이끄는 소규모 자코바이트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로스셔는 1661년에 카운티로 공식 편성되었고, 크로마티는 1698년에 카운티가 되었습니다. 18세기에는 정부가 클랜 족장들의 권력을 축소하면서 외지인들이 이 지역 토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들은 19세기 초 '하이랜드 클리어런스(Highland Clearances)' 과정에서 수천 명의 소작 농민(크로프터)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그 자리에 대규모 양목장을 조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 저지대와 캐나다, 미국, 호주로 대규모 이주가 일어났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소작 농민들에 대한 폭넓은 여론의 동정에 힘입어 보호 입법이 이루어졌지만, 지속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크로프터와 농촌 주민들은 20세기에 들어서도 도시 지역으로 계속 떠나갔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관광업의 발전과 북해 유전 개발이 이 지역에 새로운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으며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