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왕국 신라의 수도, 경주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던 삼국 중 하나였습니다. 신라는 660년과 668년에 걸쳐 다른 두 나라의 영토를 정복하며 한반도 전역을 통일했고, 그 후 거의 3세기에 걸쳐 935년까지 세력을 유지했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신라의 수도는 바로 경주였습니다.
오늘날 경주는 경상북도의 도청 소재지이자, 신라 시대의 사찰·고분·기념물이 곳곳에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이 일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되었으며, 흔히 '벽 없는 박물관'이라 불립니다.
경주에는 석굴암, 불국사, 월성궁터를 포함한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 산성, 양동마을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첨성대, 아시아 현존 최고(最古)의 천문대
이러한 기념물 가운데에는 647년, 선덕여왕 재위 기간에 세워진 첨성대가 있습니다. 첨성대는 아시아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입니다. 선덕여왕은 첨성대가 완성된 같은 해에 승하했으며,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동아시아 역사상 두 번째 여왕이었습니다.
당시 계절의 변화는 농사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천문학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더욱이 점성술이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대였기에 천문 관측은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신라는 천문 관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첨성대의 건설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별을 보는 탑'이라는 이름 그대로의 구조
첨성대라는 이름은 한국어로 '별을 보는 탑'을 뜻하며, 그 이름처럼 높이 9.17m의 병 모양 탑으로 지어졌습니다.
탑의 기단부는 폭 5.7m로, 직사각형 돌 12개를 한 층으로 쌓아 만들어졌습니다. 이 12개의 돌은 연중 12개월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탑 몸체 안은 창문 높이까지 흙과 잡석으로 채워져 있는데, 창문은 원통형 몸체 중간에 하나만 뚫려 있으며 남쪽(약간 남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기록으로 전해지는 백제의 첨성대라는 이전 시대 천문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통형 몸체는 1년의 날수를 상징하는 화강암 조각 365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탑 상단 내부에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돌판 하나가 추가로 놓여 있습니다. 365개의 돌 각각은 원통형 구조에 맞추기 위해 휘어지거나 접힌 형태의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탑에는 27층의 돌층이 있는데, 이는 선덕여왕이 신라 제27대 군주였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일 수 있습니다. 기단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28이 되며, 이는 동아시아의 28수(宿) 별자리와도 일치합니다.
창문은 몸체를 위아래로 각각 12층의 돌층으로 나누어, 12개월과 24절기를 상징합니다. 24절기란 중국력에 따라, 그리고 태양 주위 공전 궤도상 지구의 위치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절후를 말합니다.

천문대로서의 기능과 후대에 남긴 영향
탑 꼭대기에는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정확한 성격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장치를 고정할 수 있게 했던 구조물, 즉 네 개의 모서리가 튀어나온 서로 맞물린 두 돌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9~20층과 25~26층에는 끝부분이 튀어나와 있는데, 이는 사다리를 걸어 창문이나 꼭대기를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첨성대는 675년에 세워진 일본의 센세이다이(占星臺) 천문대와 723년 중국의 주공(周公) 관측소 건설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천문대임을 밝혀낸 연구와 보존 노력
이 탑이 천문대였음을 처음 인식한 사람은 일본의 기상학자 와다 유지(Wada Yuji)였습니다. 그는 1910년, 나무로 된 구조물 위에 관측용 풍선이나 천문시계를 설치할 수 있었다는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첨성대의 원래 모습과 형태는 1,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구조물이 북동쪽으로 약간 기우는 현상이 확인되면서, 구조적 변위와 균열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이 설치되었습니다. 천 년의 세월을 견뎌 온 이 별보는 탑은 과학과 역사의 소중한 유산으로서 지금도 정밀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