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서사시의 종언: 튀니스 함락을 앞둔 제8군의 마지막 역할

서사시의 종언: 튀니스 함락을 앞둔 제8군의 마지막 역할

몽고메리의 정예부대, 서쪽으로

1943년 4월 30일, 알렉산더(Alexander) 장군은 튀니스를 향한 공세를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제8군의 병력을 희생하면서까지 제1군을 추가로 증강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같은 날 몽고메리(Montgomery) 장군에게 자신이 운용할 수 있는 최정예 부대들을 지체 없이 제1군 쪽으로 보내도록 지시했다.

이에 제8군은 성문을 옮기듯 대규모 재배치를 감행하여, 앤더슨(Anderson) 장군에게 자신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노련한 주력 부대들을 넘겼다. 곧 제8군이 창설될 당시 그 핵심을 이루었던 제4인도사단, 제7기갑사단, 제201근위여단이 그것이다. 제1군 사령관은 이 증원 병력을 제9군단에 배속시키고, 이번에는 호록스(Horrocks) 장군의 지휘 아래 해당 군단에 주공(主攻) 임무를 맡겼다.

그 결과 제8군에는 세 개의 보병사단(영국군 제50·51보병사단, 뉴질랜드 제2사단), 두 개의 기갑여단, 그리고 르클레르(Leclerc)가 이끄는 프랑스군 부대만이 남게 되었다.

'모루'가 된 제8군, 서사시의 끝

이로써 아프리카에서 2년 넘게 이어진 투쟁 속에서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고, 그 파란만장한 행로로 온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이 군대의 서사시는 저물었다. 제8군은 이제 자그우안(Zaghouan)산과 지중해 사이 진지에 버티는 '모루(anvil)' 역할로 전락했다. 제1군은 바로 이 모루 위에서 적을 내리쳐야 했다.

프랑스 자유군 제1사단의 늦은 도착

5월 초, 1942년 6월 비르하켐(Bir-Hakeim) 전투에서 불멸의 영광을 쌓았던 드 라르미나(de Larminat) 장군의 프랑스 자유군 제1사단(D.F.L.)이 무대에 등장한다. 쾨니히(Kœnig), 브로세(Brosset), 르롱(Lelong) 등 세 장군이 지휘하는 여단들로 편성된 이 사단은 리비아에서 출격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제8군의 실전 작전에 가담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5월 6일, 이 사단은 제브엘 가르시(Jebel Garci) 지역을 방어하던 르클레르 기동부대의 우익에서 타크루나(Takrouna) 지역의 영국군 제51사단과 교대에 들어간다. 이어 타크루나 북방 고지대에서 소탕 작전을 수행하며 다시 한번 그 전력을 입증했으나, 그 대가로 상당한 인명 손실을 치러야 했다.

"적은 익었다": 최후 공세의 개시

한편 제1군은 두 개 여단을 제외한 연합군의 거의 모든 기갑 전력을 갖출 만큼 크게 증강된 상태였다. 적이 이미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들일 '익은'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알렉산더 장군은 지체 없이 총공세에 돌입하기로 결정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튀니스는 함락되었고, 북아프리카의 추축국군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