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장 샤를 드 폴라르, 무술의 '예언자'이자 공격의 '피스톤'

장 샤를 드 폴라르, 무술의  예언자 이자 공격의  피스톤

장 샤를 슈발리에(기사) 드 폴라르(Jean Charles de Folard)는 군사사와 전쟁의 기술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1669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16세 소년이던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집을 뛰쳐나와 루이 14세의 프랑스군에 입대했다.

카이사르를 읽고 떠난 소년, 전장의 별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 중 하나인 보병연대에 배속되었다. 22세 때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9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견습 장교였고, 1년 뒤 소위로 임명되었다.

1699년 그는 중위로 진급했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자 원수 방돔(Vendôme)의 부관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파견되었다. 그는 1705년 카사노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중상을 입었고, 이후 1709년 처참했던 말플라케 전투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몰타의 성 요한 기사단과 함께 튀르크와 싸웠고, 이후 스웨덴 국왕 카를 12세의 군대에 합류했다. 1719년에는 사국 동맹 전쟁에서 스페인군과 맞섰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병법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시작했는데, 고대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의 저작에 대한 주석 형태로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의 저작은 1724년과 1727년에 출간되었다.

폴라르의 '예언'

폴라르는 공격 교리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그는 당시 통용되던 선형 전술이 적을 분쇄하고 파괴하는 데 필요한 충격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폴라르에게 진정한 힘은 대형의 '무게', 곧 종심과 결속력에서 나왔다.

측면도 정면만큼 강해야 했다. 깊은 종심은 가느다란 선형으로 서 있는 그 어떤 적에게도 우위를 보장했다. 종심 배치로 줄어드는 보병대대의 정면 폭을 보완하기 위해, 폴라르는 각 6개 보병대대로 구성된 여단을 종심 대형으로 편성할 것을 제안했다.

각 대대는 500명으로 이루어지며, 그중 100명은 사리사(긴 창)를 들고 나머지는 총검을 장착한 머스킷을 지녔다. 이 대대들은 평지에서 정면 20~30명, 종심 16~25열의 대형을 이루었다.

험준한 지형에서는 종심이 60열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이 깊은 팔랑크스 대형의 목표는 적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당시 보병은 통상 3~4열, 많아야 5열 이내의 얕은 대형으로 배치되었다.

결국 선형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결속력을 잃을 위험이 거의 없는 팔랑크스는, 당시 머스킷의 제한적인 화력을 감안하면 적의 전선을 손쉽게 돌파할 수 있었다.

폴라르는 대대 사이에 틈을 두는 것까지 예견했다. 사리사 병들은 상대적으로 앞쪽에 위치해 창을 앞으로 내밀며 전진했고, 정예 척탄병들은 대형 밖에 머물며 대대 간 틈을 엄호하거나 각 팔랑크스 뒤에 정예 추격 예비대로 배치되었다.

깊이와 무장 덕분에 폴라르가 구상한 대대들은 적 기병의 위협에서 자유로웠다. 만약 팔랑크스가 적 보병에게 측면을 공격당하면, 대대는 둘로 '분할'될 수 있었다. 후방 부대가 측면을 엄호하고 전방 부대가 정면에서 싸우는 방식이었다.

체스판 같은 전투 대형, 거대한 '피스톤'

보병과 기병의 긴밀한 협동을 추구한 폴라르는 군대를 200m 간격의 두 전열로 배치할 것을 제안했다. 각 전열은 마치 체스판의 흑백 칸처럼 보병 여단과 기병 여단이 번갈아 배열되었다.

제2전열에서는 보병 뒤에 기병이, 기병 뒤에 보병이 위치했다. 전체 배치의 측면은 보병 팔랑크스가 엄호했다.

이렇게 편성된 군대 전체는 거대하고 강력한 하나의 '피스톤'이 되어, 전선에서 미리 선정한 지점에서 적 부대를 분쇄하고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 측면의 안전을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또한 그는 보병 소대가 기병 부대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폴라르는 화력 우위의 신봉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 이전과 이후의 많은 장군들처럼, 창의 위협이 적을 마비시키고 도주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생전엔 외면받고, 역사는 그를 기억하다

그의 구상은 생전에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제안한 공격 팔랑크스는 수십 년 뒤 프랑스 혁명군과 나폴레옹 군대에 위대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역사에서 무(無)에서 유(有)가 태어나는 일은 없는 법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1750년, 옛 적국인 영국으로부터 포상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752년 조국 프랑스에서 잊힌 채 세상을 떠났다.

장 샤를 드 폴라르, 무술의  예언자 이자 공격의  피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