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닌 씨족 단위의 유목민 집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집시는 하나의 동질적인 민족이 아니며, 여러 민족 집단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들은 '롬(Roma)'이라고도 불리며, 서양 역사에서 그들의 생활 방식이 유럽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지면서 오랫동안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집시 민족의 기원
집시들은 문자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는 모두 비(非)집시인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남겨진 기록들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집시의 기원지입니다. 현재는 인도, 특히 펀자브 지역이 가장 유력한 고향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출발한 집시들은 이집트를 거쳐 유럽 대륙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페인에 집시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최초의 문서는 1423년의 것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를 위해 영토 통과 허가를 요청한 기록입니다.
집시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롬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는 미국(약 100만 명), 브라질(약 80만 명), 스페인(약 71만 명)입니다.
반면 인구 대비 롬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세르비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입니다.
브라질의 집시
집시들은 포르투갈 항해자들과 함께 브라질에 도착했습니다. 포르투갈 당국은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 이들을 해외 식민지로 보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집시들은 바이아(Bahia) 주를 중심으로 국토 전역에 걸쳐 정착했습니다.
현재 브라질에는 세 개의 주요 집시 집단이 있습니다. 첫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출신으로 칼로(Caló) 방언을 사용하는 집단, 둘째는 주로 동유럽 출신으로 로마니어를 사용하는 롬(Rom) 집단, 마지막으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독일과 프랑스에서 이주한 신티(Sinti) 집단입니다.
브라질 지리통계국(IBGE)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브라질에는 약 80만 명의 집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대부분은 더 이상 유목 생활을 하지 않고 한 지역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시의 문화
유목 생활을 해온 집시들은 거쳐 간 지역의 습관과 관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시 문화를 구성하는 공통된 특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집시들은 어디서든 수행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은 대장장이, 상인, 말과 소를 관리하는 목축업자 등으로 일했습니다.
집시 씨족 내에서 여성은 가정 영역에 더 머무는 경향이 있었지만, 재봉사, 레이스 장인, 예술가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손금과 카드 점을 통해 미래를 점치는 일에도 종사했습니다.
가족과 씨족에 대한 충성심, 동족 간의 혼인 같은 가치관 역시 모든 집시 공동체에서 관찰되는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로마니어 - 집시의 언어
집시들은 로마니어(Romani)라고 불리는 고유 언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는 문자로 기록되지 않는 언어로, 롬 가정 안에서 구두로 전수됩니다. 이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민족 집단이 있는 반면, 몇 마디 단어만 아는 집단도 있습니다.
또한 비(非)집시가 이 언어를 배우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세계화와 인터넷의 확산으로 이러한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집시의 종교
중요한 점은 집시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독자적인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련의 신앙과 원칙은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신(神)의 형상이나 종교적 위계 질서는 없습니다.
집시들은 이동하던 지역의 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영주의주의,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집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 집시들 사이에서는 산타 사라 드 칼리(Santa Sara de Kali)에 대한 깊은 신앙이 전해집니다. 그녀는 프랑스 남부에서 집시들을 도왔던 인물로 여겨집니다.
또한 브라질의 움반다(Umbanda) 종교에서는 고인이 된 집시의 영혼이라 여겨지는 '집시 영령(엔티티)'이 존재합니다.
집시의 춤
집시의 춤은 여러 문화적 요소가 섞여 탄생했지만, 스페인에서 크게 꽃피웠습니다.
집시들은 야영지나 잔치에서 악기 연주와 노래, 박수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 원의 중앙에서 춤을 추곤 했습니다.
그래서 집시의 춤은 감각적이고 강렬하며 매우 표현력이 풍부합니다. 몸 전체가 움직임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맨발로 춤추는 관습이 있으며, 긴 치마와 화려한 보석 장식을 갖추곤 했습니다.
집시 문화의 모든 요소 중에서 플라멩코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예술입니다.
집시에 대한 편견
집시들은 유럽에서 늘 편견의 대상이었으며, 이러한 태도는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번져나갔습니다.
이들이 늘 곁눈질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생활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정착 사회 속에서 유목민으로 살았고, 모든 사회가 성문법을 갖추던 시대에 문자로 된 법이 없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를 받아들였음에도 점복처럼 교회가 금지한 관습을 계속 행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에 대해 온갖 소문이 만들어졌고, 사기꾼이나 도둑으로 규정지어졌습니다. 마치 이런 행위가 집시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입니다.
집시에 대한 고정관념
특정 집단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이 존재하듯, 집시에 대해서도 수많은 선입견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 중 하나는 '집시가 아이를 훔쳐간다'는 소문입니다. 집시 무리가 도시를 지나간 후 아기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모든 소외된 집단이 이 범죄로 누명을 써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 다른 흔한 비난은 집시가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집시가 외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지만, 집시들 사이에서는 구성원 간의 부정행위를 막는 엄격한 명예 코드가 존재합니다.
즉, 이러한 태도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이 민족에게 타고난 특성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집시에 대한 박해
집시들은 유럽에서 국민 군주제가 형성되던 시기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모든 이가 추방되었고, 이 조치는 유대인과 무슬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중에는 집시들이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 약 25만 명의 롬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크로아티아에서는 집시 인구가 거의 절멸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에도 롬 사람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차별과 혐오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