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 최초의 폴리스(도시 국가)가 형성되던 고졸기 시대에 등장한 도시들입니다. 이 과정은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전 500년 사이, 유목 부족이었던 게노스(Genos)가 정착 생활로 전환되면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레네스(Hellenes)'라 불렀고 신앙 체계나 지역 귀족의 특권처럼 공통된 관습과 전통을 일부 공유했지만, 각 도시는 서로에게 완전히 독립적이었습니다.
도시 간 차이가 워낙 뚜렷했기 때문에 하나의 통일된 그리스 민족 국가가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도시 국가 가운데서도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를 상징하는 가장 큰 양극단이었습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관계, 협력에서 대립까지
스파르타는 이미 기원전 520년경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장악하며 그리스의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부터 아테네와의 마찰이 시작되었는데, 기원전 510년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 1세가 아테네를 공격했다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인 기원전 480년, 두 도시는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에 맞서 손을 잡습니다. 아테네가 해상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고, 스파르타가 육군을 꺾으며 함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에 대한 공동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강대국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은 점차 깊어졌습니다. 델로스 동맹 창설 이후 아테네는 그리스 최강의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였고, 이는 기원전 432년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장기간의 소모전으로 인해 두 도시 모두 심각하게 약화되었습니다.
이 틈을 타 기원전 370년에는 테베가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테베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기원전 338년 그리스를 정복할 때까지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주요 특징
스파르타(라케다이몬)는 철 제련 기술을 익힌 도리아인들이 기원전 1200년경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를 정복하면서 등장했습니다.
기원전 700년 무렵까지 그들은 적대 세력을 물리치고 반도 전역을 정복하여 주민들을 속민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스파르타는 광대한 비옥한 토지를 확보했고, 풍요로운 자급 자족은 외부와의 교류를 줄여 '외국인 혐오'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습니다.
교육은 남자는 7세, 여자는 12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남성의 훈련은 군사적 성격을 띤 신체적·정신적 단련으로, 강력하고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전사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여성들 역시 전투 훈련을 받았으며, 남편이 부재중일 때 가사 전반을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습니다. 또한 여성은 시민 집회와 체육 경기에 참석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스파르타 사회에서 정치적 권리를 가진 것은 오직 도리아인의 직계 후손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을 보조한 것은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던, 정복당한 아카이아인의 후손인 페리오이코이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최하층은 전쟁 포로 출신 노예인 헤일로토이가 담당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스파르타는 두 명의 왕이 권력을 분담하는 양두 정치(디아르키아)를 채택했습니다. 한 왕은 군사를, 다른 왕은 종교 업무를 맡았으며, 이들은 60세 이상 장로 28명으로 구성된 게루시아(장로 회의)와 30세 이상 시민으로 구성된 아펠라(민회)의 결정을 존중하며 통치했습니다.
아테네의 주요 특징
아테네는 기원전 1600년경 이오니아인들이 아티카 반도 지역에 세운 도시입니다. 이후 아카이아인, 이오니아인, 아이올리아인 등 크레타-미케네 계통의 여러 민족들도 아테네 시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농사에 적합한 비옥한 평야가 부족했던 아테네인들은 어업과 해상 무역에 주력했습니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활용하여 밀, 포도, 올리브, 도자기를 지중해와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 도시들과 거래하며 번영했습니다.
아테네의 교육은 스파르타에 비해 훨씬 균형 잡혀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신체와 정신의 발달을 동시에 추구했으며, 다만 이러한 교육은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특권이기도 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예술과 문학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그 결과 아테네는 그리스의 문화 중심지이자 서양 철학과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러한 교육의 혜택에서 소외되었습니다. 그들은 순종하고 온순하게 길러져 일상적인 가사 활동만을 하도록 기대받았습니다.
아테네는 기원전 8~7세기까지 군주제로 운영되다가 이후 민주주의가 확립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정치 체제는 사실상 과두제(소수의 지배)였으며, 도시 건국자들과의 친족 관계가 멀수록 가문의 위상도 낮아졌습니다.
따라서 대지주 귀족 계층인 에우파트리다이가 가장 좋은 토지를 차지했고, 친족 관계가 더 먼 농민 계층인 조르고이는 작은 토지를 받았습니다. 전문 장인인 데미우르고스는 토지와 지위를 갖지 못했으며, 사회 최하층의 데테스는 종종 빚 때문에 노예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아테네의 정치 권력은 에클레시아(Ecclesia, 민회)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이 민회에는 18세 이상, 군 복무 2년 이상을 마쳤으며 아버지가 폴리스 출신인 남성 시민만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