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침공에서 미국 개입, 그리고 탈레반의 재등장까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79년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소련(USSR)과 아프간 세력 간의 충돌이었으며, 이후 미국이 이 분쟁에 개입하면서 양상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 전쟁은 미국과 동맹국이 탈레반 정권에 맞서는 구도로 이어졌고, 약 20년간의 분쟁 끝에 2021년 미군 철수와 함께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며 한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적 배경

주요 유럽 열강들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으로 사실상 국토가 파괴되었습니다. 반면 미국은 산업 기반의 손실 없이 전쟁을 마친 뒤 세계 시장에 물자를 공급하고 여러 국가에 재정 지원을 확대하며 자본주의 진영의 최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USSR) 역시 세계 2위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동유럽 국가들에게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소련은 1978년 공화국이 선포된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일부 아시아 국가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1950년대부터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두 강대국이 이념적 패권을 두고 대립한 이 시기를 흔히 냉전이라고 부릅니다.

양국은 직접 전장에서 맞붙지는 않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대리전 형태로 격돌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제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 (1979~1989)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침공에서 미국 개입, 그리고 탈레반의 재등장까지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러 세력 간의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주요 세력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연계된 공산 세력과, 외세의 어떠한 이념도 거부하던 종교 세력이었습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공산 세력을 지원했습니다.

소련은 바브라크 카르말(Babrak Karmal, 1929~1996) 대통령을 지원·옹립하다가,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제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막을 올렸습니다.

소련의 목표는 약화되던 자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공산 정권에 반란을 일으킨 무자헤딘(mujahideen) 게릴라 세력을 진압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전쟁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역시 전쟁에 개입하여 반소 세력에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중국, 그리고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무슬림 국가들과 손잡고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와 군사 기지를 장악했지만,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반군의 저항을 더욱 격화시켰습니다.

10년간 이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미국은 특정 아프간 반공 무장 세력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훗날 이들 옛 동맹 세력은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통치하에 놓이면서 미국의 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관계는 주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의 납치와 사망 사건으로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미 난항을 겪고 있던 소련과의 협상 역시, 미국이 이 사건의 책임이 소련에 있다고 비난하면서 더욱 결렬되었습니다.

분쟁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소련은 1988년 5월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명령에 따라 군대 철수를 개시했으며, 이 전쟁에서 소련은 약 15,000명의 인명을 잃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침공에서 미국 개입, 그리고 탈레반의 재등장까지

이후 수십 년간 이 지역은 내전과 국제 개입으로 얼룩졌으며, 대표적인 분쟁은 다음과 같습니다.

  • 걸프전 (1990~1991)
  • 이라크 전쟁 (2003~2011)

제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2021)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테러가 제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지시로 알카에다가 실행한 이 테러는 탈레반 정권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조지 W. 부시였습니다. 테러의 표적 중 하나는 미국 경제력의 상징이자 '쌍둥이 빌딩'으로 불리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er)였습니다.

미국은 2001년 10월 7일 NATO의 지원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이는 유엔(UN)의 사전 승인 없이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목표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을 색출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설치된 테러 훈련 캠프와 탈레반 정권을 종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20일에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군사 임무를 승인했습니다. 이 임무는 6개월간 지속되며 민간인을 탈레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영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독일 등 주요 동맹국들이 미국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참전했습니다.

전투, 폭격, 파괴, 그리고 수천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이 분쟁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간에 전략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미군 단계적 철수를 포함한 안보 계획을 담고 있었으나, 미군 병력에 대한 면책특권 부여 등 일부 현안에서 양국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2011년 6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병력 철수를 시작했으며, 당초에는 2016년 완료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쟁의 결과

2020년 2월 미국과 탈레반은 도하 협정을 통해 미군 철수 로드맵에 합의했고, 2021년 8월 마지막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자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장악하며 2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습니다.

길고 긴 전쟁 기간 동안 유엔은 평화 정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유엔의 역할은 테러의 근절과 함께 아프간 국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입니다.

그러나 국가 기반 시설이 제대로 재건되지 못한 가운데,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의료 서비스 부재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아프간 국민의 깊은 고통에 더해, 이 전쟁은 수많은 사망자, 참전 군인들의 심리적 후유증, 그리고 무기에 투입된 천문학적인 비용이라는 무거운 대가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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