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결과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은 수천만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남기며 세계 권력 구도를 완전히 다시 그렸습니다.
이 전쟁의 대표적인 결과로는 미국의 부상,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양분된 세계 질서, 그리고 유엔(UN)의 창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게툴리우 바르가스 정권의 종말과 미국과의 관계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규모
일부 추산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약 4,500만 명이 목숨을 잃고 3,500만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은 소련으로 약 2,00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폴란드는 약 600만 명, 독일은 약 550만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일본에서도 150만 명이 전쟁으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를 낳았습니다. 나치는 산업적인 방식으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유대인의 물리적 말살은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계획한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나치는 강제 수용소와 절멸 수용소로 이루어진 조직적인 학살 시스템을 만들어냈습니다.
경제적 결과
인명 피해 외에도 전쟁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은 무려 1조 3,85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 중 21%는 미국, 13%는 소련, 4%는 일본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전쟁에 참여한 72개국 모두 각기 다른 비율로 손실을 입었으며, 공업 생산량은 급감하고 정부 투자는 다른 분야보다 전쟁에 집중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본토가 공격받지 않아 재건에 자원을 쓸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적·경제적 지위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지정학적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국가들이 등장했고, 여러 나라의 국경이 다시 그려졌습니다.
1938년 독일에 병합되었던 오스트리아는 독립국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탈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살라자르와 프랑코의 독재 정권이 각각 집권하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1950년대 중반까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로 남았습니다.
소련에 의해 해방된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되었고,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유지했습니다.
독일
전쟁 후 독일은 연합국이 부과한 '4D' 원칙, 즉 탈나치화(denazification), 비무장화(demilitarization), 민주화(democratization), 군축(disarmament)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나치 지도자들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그중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한편 독일은 두 개의 뚜렷한 영향권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독일민주공화국(GDR, 동독)과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 독일연방공화국(RFA, 서독)입니다.
당시 동독의 수도였던 베를린에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으며, 이 장벽은 세계의 이념적 분단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한 독일의 군대는 대폭 축소되었고,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시설들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일본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쿠릴 열도를 소련에 반환하며, 군대를 축소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투하한 두 개의 원자폭탄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파괴되었고, 일본은 재건을 위해 25억 달러를 지원받았습니다.
냉전의 시작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약 3,000억 달러를 투자했고, 군수 산업이 75% 성장하면서 이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또한 폐허가 된 국가들의 채권국이 되었으며, 1948년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유럽의 공업과 도시 재건을 위한 380억 달러 규모의 경제 원조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이 원조를 거부했고, 이것이 이른바 '냉전'으로 알려진 시대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로 영향력을 확장했으며,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추구하는 운동들을 계속해서 지원했습니다.
브라질에 미친 영향
브라질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바르가스 정권의 종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식인들, 다양한 성향의 정치인들, 그리고 국민 일부는 독재 체제 하에 있는 브라질이 정작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병사들을 파견하는 모순을 문제 삼았습니다.
결국 게툴리우 바르가스는 1945년 군부와 보수 세력이 결합한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이듬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에우리쿠 가스파르 두트라가 당선되었습니다.
바르가스는 브라질 원정군(FEB)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 것을 우려하여, 이 부대가 아직 유럽에 머무는 동안 해체시켰습니다.
한편 브라질은 정치·문화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는 '선린 정책(Good Neighbor Policy)'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전쟁 참전에 대한 보상으로 브라질은 유엔(UN) 창설에 초청받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