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그 역사적 기원부터 현재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영토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오늘날 국제 정치와 외교 논의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분쟁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선언을 계기로 격화되었으며, 20세기 말에 이르러 더욱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

팔레스타인은 중동 지역에서 요르단 강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땅으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자 1917년부터 영국이 이 지역의 통치를 맡았습니다. 1946년 말을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에는 약 120만 명의 아랍인과 60만 8천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겪었던 박해를 피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대규모 이주를 시작했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이 지역이 유대인의 주도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지역은 '성지'이자 '약속의 땅'입니다. 다만 성스러운 장소라는 개념은 무슬림과 기독교인에게도 공유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그 역사적 기원부터 현재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

분쟁의 근원은 매우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굳이 시점을 짚자면, 서기 70년 로마 제국이 유대인들을 추방하면서 유대인들이 북아프리카와 유럽으로 흩어진 사건이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일부 유대인들은 헝가리 출신 테오도어 헤츨(Theodor Herzl, 1860~1904)의 시온주의 사상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터전이 '시온', 즉 이스라엘의 땅 팔레스타인에 마련되어야 하며, 언젠가 유대인도 다른 민족처럼 자신의 나라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무렵, 시온주의 유대인들은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한 압박을 본격적으로 강화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600만 명의 유대인이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지원 속에 1948~1949년 해당 지역은 세 부분으로 나뉘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국토, 요르단강 서안지구, 그리고 가자지구입니다.

UN(국제연합)이 설계한 이 분할 안은 영토의 55%를 유대인에게, 44%를 팔레스타인인에게 넘기는 내용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 모두에게 종교적 의미가 큰 도시이기 때문에 국제 관할 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랍 측 대표들은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1948년 5월 14일, 영국 철수 이후 이스라엘이 정식으로 건국되었습니다. 그다음 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아랍인들은 이 전쟁을 '나크바(Nakba)', 즉 '재앙'이라 불렀습니다.

전쟁은 1949년에 종결되었고, 그 결과 약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되어 난민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를 흔히 '나크바 대추방'이라고 부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추방 결과로 이스라엘은 영토를 50%나 확장했습니다. UN이 지정한 구획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배정되었던 면적의 78%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이 조치는 국제사회에서 별다른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국제적인 반응이 나타난 것은 1956년,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 통제권을 두고 충돌해 UN의 명령에 따라 운하 사용권을 확보한 이후였습니다.

1959년에는 팔레스티나 해방기구(PLO)가 창설되었으며, UN은 1974년에야 이 기구를 공식 승인했습니다.

6일 전쟁 (1967)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그 역사적 기원부터 현재까지

1967년 새로운 전쟁이 발발했고,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른바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시나이반도, 요르단강 서안지구, 그리고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했습니다.

그 결과 5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길에 올랐으며,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242호를 채택했습니다. 이 결의는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을 용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해당 지역 모든 국가의 평화로운 공존의 권리를 확인했습니다.

아랍 측은 1973년 유대교의 성일인 욤 키푸르에 맞춰 요므 키푸르 전쟁(10월 6일~26일)을 일으키며 점령지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시나이반도가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 반환된 것은 1979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비로소 실현되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지역에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근거는 성경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이 위치한 아프리카와 중동 사이의 땅이 하나님이 예언자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라고 여깁니다.

이는 현재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요르단 서부, 시리아 남부, 레바논 남부에 해당하는 영토이며,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이 출애굽 이후 이 땅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이것이 영토의 전면적 점유를 요구하는 시온주의 유대인들의 근거입니다. 참고로 전쟁 이전 팔레스타인 인구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아랍인들은 성경에 근거한 권리 주장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며,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들도 포함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들은 13세기에 걸친 거주 역사에 근거한 점유권 역시 내세우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점령의 역사

이 지역은 기원전 2000년경 아모리인, 가나안인, 페니키아인 등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당시에는 '가나안 땅'이라 불렸습니다. 셈족계 유대인(히브리인)의 도래는 기원전 1800년에서 1500년경에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연이은 침략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대제가 이곳을 점령했고,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침공으로 재차 함락되었으며, 기원전 64년에는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의 침입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는 서기 634년까지 이어졌고, 아랍의 정복 이후 팔레스타인은 13세기에 걸친 무슬림 시대를 맞이합니다. 아랍의 지배 아래 있던 팔레스타인은 1099년부터 1291년까지 여러 차례 십자군 원정의 표적이 되었으며, 1517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점령이 시작되어 1917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지휘하는 프랑스의 공세 이후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의 지배로 넘어갔고, 1834년 아랍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1840년에야 런던 조약으로 이집트의 지배가 종식되었고, 1880년부터 아랍인들의 자치 요구 움직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917년 팔레스타인은 영국 위임통치령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통치는 1947년 2월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위임통치를 포기하면서 전쟁 물자 대부분을 시온주의 단체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21세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그 역사적 기원부터 현재까지

분쟁은 끝나기는커녕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수천 명의 아랍인이 여전히 난민 캠프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UN이 팔레스타인 국가 자율성을 승인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촌을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도 비난받은 바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팔레스타인 측은 미래의 팔레스타인 국가가 1967년 이전의 경계선을 국경으로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 거주하는 난민 1,000만 명의 귀환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 주장은 헤이그 협약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분리 장벽

현장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의 우위는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2002년 아리엘 샤론(1928~2014)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장벽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이 장벽은 현지 공동체와 농경지를 분리시켰습니다.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향해 새로운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이는 2005년 휴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격이었는데, 당시 휴전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유대인 정착촌 철수 약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2014년 여름 53일간의 충돌에서 팔레스타인인 2,2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점령지 팔레스타인 인도적 조율을 위한 유엔사무소(OCHA)에 따르면 이 가운데 1,500명은 민간인이었고 538명은 미성년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71명으로, 이 중 6명이 민간인이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중동
  • 시리아 내전
  • 십자군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