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후반,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고 국가 체제를 개편한 뒤에도 인근 폴리스인 아르고스라는 가장 위험한 적을 안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치 체제와 헤일로타이(노예 계층)에 대한 통치를 지키기 위해, 그리스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국가였던 스파르타는 다른 도시들의 지원이 절실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코린토스를 비롯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거의 모든 도시 국가(폴리스)를 포괄했으며, 아르고스와 몇몇 소규모 도시만이 동맹에서 제외되었다. 동맹 내 최강국이었던 스파르타는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다른 도시들은 스파르타의 체제를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이들은 심마키아, 즉 군사 동맹을 결성하여 필요할 때마다 병력을 제공할 의무를 지게 되었으며, 동맹군은 반드시 스파르타 장군의 지휘 아래 움직여야 했다. 심마키아 내에서 스파르타가 패권 도시의 지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조직과 운영 방식
이 심마키아에 가담한 도시들은 각자의 자율성과 내정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상설 정부 기구나 특별 관료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을 낼 의무도 없었다. 모든 회원국은 무역과 외교의 자유를 누렸지만, 동맹 도시들 간에는 전쟁을 벌이지 않아야 했고, 스파르타의 주도로 동맹 외부의 도시들과 전쟁을 수행해야 할 때는 병력을 파견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참주 정치에 대한 저항과 귀족 정체의 유지
초기의 이 동맹은 뚜렷한 정치적 성격을 내세우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참주(僭主) 체제의 등장에 맞서 싸우는 데 집중했다. 기원전 5세기 내내 동맹을 구성하던 도시들은 대체로 명확한 윤곽을 지닌 귀족 정체(貴族政體)를 유지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과 아테네와의 대결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연방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 정치적·군사적 위상은 아테네 동맹과 견줄 만큼 막대했다. 페르시아 전쟁 시기에는 페르시아를 격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군사 조직이었으며, 불과 수십 년 후에는 아테네가 주도하는 민주주의 진영의 동맹 도시들을 물리치는 데도 성공했다.
스파르타 제국주의와 륙트라 전투
그러나 기원전 4세기 전반기에 들어서면서 스파르타의 동맹 내 패권은 노골적인 스파르타 제국주의로 변질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제2차 아테네 동맹과 테베 군대가 륙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군사적으로 처음으로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서도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명맥을 이어갔다.
스파르타 체제의 재편과 제도의 지속성
한편 스파르타 국가는 제2차 메세니아 전쟁 이후 몇 년간 재편 과정을 거쳤으므로, 그 제도들이 단일 입법자인 리쿠르고스 한 사람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확립된 이러한 제도는 기원전 4세기 전반, 사회·국가 체계 전반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가 닥칠 때까지 실질적인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서도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기본 제도들은 계속해서 보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