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신성한 땅에서 — 보주 산맥의 가을 전투

신성한 땅에서 — 보주 산맥의 가을 전투

1944년 가을, 프랑스 보주(Vosges) 산맥. 제2군단 지휘부의 시선으로 담아낸 이 기록에는 독일군 방어선이 흔들리는 돌파구를 놓치지 않으려는 갈망과, 그것을 좌절시키는 냉엄한 현실 사이의 줄다리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집중은 꿈, 분산은 현실

전과를 확대하려면 독일군 진지가 무너지기 시작한 이 구간에 전력을 집중하고, 브레스(La Bresse)로 통하는 작은 도로가 지나가는 능선들을 점령하기 위해 이곳에 보병을 증강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작전에는 실로 불행이라 할 만한 운명이 따라붙었다. 병력을 한곳에 모을 여유는커녕, 제2군단은 전선이 북쪽으로 다시 확장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또다시 병력을 흩어야만 했다.

다행히 이러한 전선 연장은 몽사베르(de Monsabert) 장군을 당황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9일, 좌익을 엄호하기 위한 새로운 전투단을 창설해 두었던 것이다. 르코크(Lecoq) 대령이 지휘하는 이 부대는 F.F.I.(프랑스 국내군, 즉 레지스탕스 부대)를 주축으로 삼았고, 제2 알제리 정찰 스파히 연대가 이들을 지원했다.

문제는 이 부대가 추가로 약 10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선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곧 별다른 지원도 증원도 없는 상황에서, 나로서는 더 이상 브레스 방면의 공격에 병력을 밀어 넣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나는 점령한 진지를 지키고, 유일한 보급로인 레미르몽(Remiremont)~술쉬르(Saulxures) 도로를 보호하는 데 꼭 필요한 작전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모젤로트(Moselotte) 강 북쪽 능선을 확보하는 것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83명의 희생이 바친 신성한 땅

그런데 이 전장은 보주 게릴라들의 영웅정신이 방금 '신성하게' 만든 땅이었다. 불과 3주 전, 그들 가운데 83명이 피캉트피에르(La Piquante-Pierre)와 누아르구트(Noire-Goutte), 롱팽(Rondfaing) 고개에서 십 대 일의 절망적인 싸움을 나흘 동안 버텨내다 쓰러졌던 것이다.

그들이 넘어진 자리에서 이제 저격병들이 그 복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공격과 반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추위와 비는 국방군(Wehrmacht)의 완강한 저항이 안겨 주는 고통과 어려움 위에 또 한 겹의 시련을 얹었다.

그럼에도 제3 알제리 보병사단(D.I.A.) 주력과 타보르(tabors) 부대는 마침내 피캉트피에르, 롱팽, 테데세르(Tête-des-Cerfs), 드루아드코르니몽(Droit-de-Cornimont)을 굳건히 손에 넣었다. 같은 시각 아고스티니(Agostini) 대령의 제3 알제리 티라이외르 연대(R.T.A.)는 샤프샤트(Chapechatte) 고지를 점령했고, 제1 샤쇠르 파라슈티스트 연대(R.C.P.)와 호응하며 헤앙(Gehan) 숲의 처절한 공략전을 끝마치고 코르니몽(Cornimont) 마을을 해방했다.

발코니에 선 자들의 다음 과제

이로써 우리는 서쪽으로 모젤로트 강 상류를 굽어보는 발코니에 섰다. 그러나 극도로 지칠 대 지친 제3 D.I.A.에게 다시 한번 주공 임무를 떠넘길 수는 없었다.

이를 어느 정도 대체하기 위해, 알프스 전선에서 돌아온 제4 모로코 산악사단(D.M.M.)에서 차출된 바이예프(Baillif) 대령의 제6 모로코 티라이외르 연대(R.T.M.)가 나의 지휘 아래 배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