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149년부터 146년까지 약 3년에 걸쳐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로마가 완승을 거두었고, 지중해의 강국이었던 카르타고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전쟁의 원인
누미디아의 왕 마시니사는 사실상 로마의 대리인 역할을 하며 카르타고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기원전 150년에는 카르타고를 방어전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것이 로마가 개입할 명분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오랜 라이벌인 카르타고가 기원전 201년에 체결된 강화 조약의 조항, 즉 일체의 군사 행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위반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당시 로마 원로원에서는 노령의 원로원 의원 카토 대(大)가 연설 때마다 "카르타고는 반드시 멸망해야 한다(Carthago delenda est)"라고 외칠 정도로 카르타고의 완전한 소멸을 주장하고 있었기에, 전쟁의 여론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전쟁의 경과
로마군이 포에니 영토로 본격적으로 진격하기 전, 인근 도시 우티카는 먼저 항복했고, 카르타고는 로마 측에 강화 조건을 요청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무기를 모두 넘기는 것이었고, 카르타고는 이를 받아들여 무기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추가로 도시의 완전한 해체와 수도의 내륙 이전을 요구하자 카르타고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장기적인 포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포위 공방전은 수년간 이어지며 극도로 참혹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카르타고의 멸망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처절한 시가전 끝에 마침내 카르타고를 함락시켰습니다. 끝까지 저항했던 용맹한 도시는 잿더미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영토는 로마의 공유지(ager publicus)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카르타고의 옛 영토는 로마의 아프리카 속주가 되었습니다.
카르타고 도시는 저주받은 땅으로 선포되었으며, "신성 모독"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재건이 엄금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주민들 가운데 탈출하지 못한 이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나갔습니다. 물론 상당수 주민들은 이미 재산을 챙겨 히스파니아(이베리아반도) 남부나 인근의 트리폴리타니아, 키레나이카 등지로 미리 피신한 상태였습니다. 포로가 된 사람들 중 50명은 스키피오를 따라 로마로 끌려가 그의 개선식 행렬에 동원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이로써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의 막이 내려졌고, 로마는 서지중해의 유일한 패권 국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