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다게스탄 1999: 이슬람 무장세력에 맞선 단 63명의 러시아 낙하산병

다게스탄 1999: 이슬람 무장세력에 맞선 단 63명의 러시아 낙하산병

1999년 8월 7일, 바사예프와 하탑이 이끄는 체첸 무장세력이 다게스탄을 침공해 보트리흐(Botlikh) 지역을 점령했다. 이들은 곧 이 지역의 여러 마을을 장악하고 '다게스탄 이슬람 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체첸 무장세력의 목표는 이 지역을 러시아로부터 '해방'시키고 이슬람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무슬림에게 '신앙의 투사(무자히드)'가 될 것을 호소하며 '불신자들'에 대한 '성전(지하드)'을 선포했다.

군사적 움직임

러시아 당국은 기습을 당한 데다 대응이 늦어, 침공이 있고 5일째가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8월 9일, 무장세력은 보트리흐 마을 서쪽의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지, 이른바 '당나귀 귀(Osliye Uho)' 언덕을 점령했다. 이 고지는 해발 1,622.5m와 1,361.5m의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지를 장악하면서 무장세력은 주요 통행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군이 8월 12일에야 다연장로켓포와 공격헬기를 동원해 고지의 반군 진지에 포격을 가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8월 13일, 제7근위공중강습사단 소속 제108근위낙하산연대의 코스틴(Sergei Kostin) 소령 지휘 아래 단 63명의 낙하산병이 정찰 소대와 함께 고지로 진격했다.

이것은 자살 임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군은 고지 탈환을 최종 목표로 세 개의 강습분대를 편성했다. 새벽이 밝기 한참 전, 러시아군은 체첸 무장세력을 기습해 성공적으로 낮은 봉우리를 확보했다.

"우리는 밤에 이동했습니다. 특수부대 한 분대가 길을 인도했죠... 6시경 사격을 개시했습니다. 약 15분간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적에게 증원이 도착한 것이 분명했습니다..."라고 러시아 낙하산병 한 명은 증언했다.

코스틴 소령은 병력을 지휘하며 러시아 포병의 지원사격을 조율했다. 그러나 곧 무장세력들이 박격포 사격에 힘입어 역습에 나섰다. 9시 15분, 코스틴은 부상을 입었지만 끝내 전장을 떠나지 않았다.

수적으로 열세인 러시아군에 무장세력들은 거센 압박을 가해 왔고, 어느새 숨이 닿을 거리까지 좁혀 들어왔다. 코스틴은 역습을 명령했다. 러시아 병사들은 총검을 장착한 채 적진으로 돌진해 백병전을 벌였고, 이렇게 적의 공격을 격퇴해냈다.

그러나 체첸 무장세력은 물러서지 않았다. 로켓 포탄 한 발이 러시아군 참호에 직격하며 큰 피해를 냈다. 이후 그들은 또다시 공격해 왔다. 코스틴은 또 한 번의 역습을 조직해 실행했지만, 이윽고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탄약이 점점 바닥나갔습니다. 무전으로 요청했더니 헬기가 파견됐죠. 부지휘관인 체프(Chef) 대위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헬기는 수류탄 폭발 속에서 착륙했습니다. 조종사는 놀라운 용맹함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지휘관은 또 부상을 입고 말았습니다..."라고 낙하산병 한 명은 회상했다.

철수

한편 지휘권을 넘겨받은 체프 대위는 포병 사격의 엄호 아래 병사들을 이 죽음의 고지에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낙하산병들은 영웅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코스틴 소령과 동료 10명의 시신을 남긴 채 진지를 내주어야 했다. 또 25명의 병사가 부상을 입었다. 체첸 무장세력의 피해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은 8월 18일 고지를 재차 공격했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한 대위는 훈련되지 않은 자기 병사들을 저 저주받은 고지에 내몰았다고 미친 듯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8월 21일과 22일에는 대규모 공습이 고지에 퍼부어졌다.

이 폭격 이후에야 무장세력들은 고지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코스틴 소령은 사후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