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칠레 정복: 스페인 정복자들의 원정과 마푸체의 저항

디에고 데 알마그로의 첫 번째 원정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디에고 데 알마그로를 남쪽 원정대에 파견했습니다. 잉카 제국조차 뚫지 못한 험준한 땅에서 알마그로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알마그로는 쿠스코를 출발하여 북쪽에서 칠레로 진입했고, 코피아포 시를 건설한 뒤 잉카 세력도 넘지 않았던 국경선인 마울레 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혈전 끝에도 황금은 발견되지 않았고, 땅은 척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국 알마그로는 뚜렷한 성과 없이 페루로 되돌아갔습니다.

페드로 데 발디비아의 칠레 원정

페루를 장악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새로운 원정대를 조직했고, 이탈리아 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동향 출신의 군인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게 지휘를 맡겼습니다. 발디비아는 약 150명의 병사와 보급품을 이끌고 칠레로 진입했습니다.

11개월에 걸친 행군과 전투 끝에 그는 산티아고 델 누에보 엑스트레모(Santiago del Nuevo Extremo), 즉 훗날 칠레의 수도가 될 산티아고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마푸체(Mapuche)족의 거듭된 공격으로 코피아포와 산티아고가 파괴되는 등 상황은 험난했습니다. 발디비아는 사업에서 이익을 거두지 못한 채 여러 도시를 추가로 건설한 뒤, 페드로 데 라 가스카의 보호를 받기 위해 페루로 돌아갔습니다.

스페인군의 참패

지역 부족들은 세력을 회복하고 라우타로(Lautaro)를 지도자, 즉 '토키(toqui)'라 불리는 아라우칸 족장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는 한때 발디비아의 시종으로 지내며 유럽의 전술을 두루 익힌 인물이었습니다.

라우타로는 투카펠 평원에서 스페인군을 대파하고 발디비아를 생포했습니다. 그는 발디비아를 고문한 뒤 살해했고, 의례적인 집단 식인 의식을 거행했습니다(1553년).

칠레 정복의 완수

발디비아의 뒤를 이어 프란시스코 데 비야그란(Francisco de Villagrán)이 지휘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는 원주민 연합을 격퇴했으며, 라우타로는 포로로 잡히기 직전 부하들에게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칠레 남부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정복 사업은 가르시아 우르타도 데 멘도사(García Hurtado de Mendoza)가 완성했습니다. 그는 카우폴리칸(Caupolicán)이 이끄는 아라우칸(Araucano)족과 맞서 싸웠는데, 이 영웅적인 항쟁은 훗날 알론소 데 에르시야 이 수니가(Alonso de Ercilla y Zúñiga)가 스페인 문학의 걸작 서사시 『라 아라우카나(La Araucana)』를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