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대공 카를이 세 번 조직한 의용군단… 장군을 위해 싸운 자원병들

대공 카를이 세 번 조직한 의용군단… 장군을 위해 싸운 자원병들

합부르크가의 대공 카를(Erzherzog Karl)은 생애에 걸쳐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이름을 딴 '군단(Legion)'을 조직했다. 정규군이 아닌 의용 부대였지만, 이 군단은 배치된 곳마다 프랑스군을 상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최초의 군단은 1792년, 오늘날의 벨기에 지역에서 탄생했다.

첫 번째 군단 – 벨기에 자원병들

1792년 창설된 첫 번째 군단은 프랑스에 반대하는 벨기에인 자원병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이 부대 소속 두 개 중대, 총 231명은 1796년 아스펜부르크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다.

두 번째 군단 –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자원병들

1800년 11월, 당시 보헤미아 총독이던 카를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출신 자원병으로 새로운 군단을 조직했다. 그는 결국 2만 명 규모의 군단을 완성했는데, 이들은 각 180명씩 6개 중대로 이루어진 20개 대대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프랑스군에게 패배하면서 이 부대는 해체되고 말았다.

세 번째 군단 – 1809년의 재건

1808년 카를은 오스트리아 황제이자 자신의 형제인 프란츠 1세에 의해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즉시 국민위병(Landwehr) 조직에 착수했으며, 이 국민위병은 1809년 전쟁과 1813~14년 나폴레옹에 맞선 전역에서 특히 큰 가치를 입증했다.

1809년 프랑스와의 전쟁을 앞두고 카를은 옛 군단을 다시 재건했다. 편성은 1809년 3월에 시작되어 보헤미아 자원병 6개 대대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모라비아와 슐레지엔 출신 자원병으로 3개 대대가 추가되었다.

마지막 세 개 대대는 '모라비아 자유군단(Moravian Free Corps)'이라 불리며 군단에 배속되었다. 이렇게 모인 9개 대대의 총 병력은 약 8,000명에 달했고, 오스트리아 육군의 '독일식' 보병 대대처럼 머스킷병 6개 중대 체제로 조직되었다.

전투력과 실전 활약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통념과 달리, 이 대대들은 상당한 수준의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 세 개 대대는 1809년 4월 카를이 프랑스의 동맹국인 바이에른을 침공할 때 그의 군에 합류했다.

제1대대는 '발트리히 사냥꾼 대대'로 알려져 있으며,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산악 사냥꾼들로 구성되었다. 이 대대는 '오스트리아의 테르모필레'라 불리는 테우겐하우젠 전투에서 진정 영웅적인 활약을 보이며 병력의 절반을 잃었고, 이후 유명한 바그람 전투에는 243명 규모로 참전했다.

제2대대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자원병으로 이루어졌으며,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와 바그람 전투에서도 선전했다. 제3, 제4대대 역시 바그람 전투에 참전했다. 반면 제5, 제6대대는 주요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주로 보헤미아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모라비아 3개 대대 역시 주로 산악 사냥꾼들로 구성되었다. 브르노에 기반을 둔 제1대대는 1,113명, 올로모츠의 제2대대는 933명, 제3대대는 1,269명의 병력을 보유했다. 제2대대는 아스페른-에슬링과 바그람에서 싸웠고, 제3대대는 바그람에 배치되었으며, 제1대대는 경비 임무를 맡았다.

훈련과 무장

군단 병사들은 정식 군사 훈련을 받지 못했다. 다만 일정한 교련과 사격 연습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었고, 최소한 매주 일요일에는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사냥 경험이 있는 병사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활용되었으며, 지휘부는 이들을 경보병 저격수로 운용했다. 무장 역시 이에 맞춰 이루어졌다.

사냥꾼들은 1807년형 또는 그 이전의 강선 소총으로 무장했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무기인 반복식 공기소총 '레페티어빈트뷔흐제 M1780'도 사용했다. 이 공기소총은 재장전 없이 20발을 연속 발사할 수 있는 놀라운 성능을 자랑했다.

그러나 군단병의 주 무기는 머스킷이었다. 대부분 구형인 M1798 머스킷을, 일부는 신형인 M1807을 사용했으며, 전형적인 긴 삼각형 총검도 함께 휴대했다. 부사관은 특징적인 지팡이와 짧은 검을 지녔고, 장교는 검과 금색 술 장식 허리띠를 착용했다.

복장

병사들은 샤코 모자를 썼지만, 장교들은 종종 챙이 달린 준고모 등 민간 모자를 쓰기도 했다. 모든 이들은 모자에 'EK(Erzherzog Karl, 대공 카를)'라는 글자를 금색으로 수놓았다. 일부 사냥꾼 부대는 오스트리아 정규 보병과 같은 형태의 투구를 썼다. 군복 상의는 벽돌색에 리본 장식이 달려 있었고, 하의는 파란색이었다.

엘리트는 아니었지만, 충성스러운 병사들이었다

군단을 엘리트 부대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규 군사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실전에 투입될 때면 적어도 무난한 수준의 전투를 수행했다. 사기 또한 매우 높았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위해 스스로 입대한 자원병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자원병들의 압도적 다수가 오스트리아인이 아니라 체코인, 즉 명목상으로는 '지배층을 위해 싸울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무기를 들은 데에는 대공 카를이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존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를은 위대한 장군이었을 뿐 아니라, 자비심과 공정한 판단으로 특별한 사랑을 받던 지휘관이었다.

군단의 한낱 머스킷병은 정규군 동료들만큼의 전문성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용기와 충성심으로 그 부족함을 충분히 만회했다. 이들은 1813~14년 전쟁에서 국민위병에 합류하며 더욱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