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바르가스 시대 임시정부(1930~1934): 권력 집중과 개혁의 시작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는 1930년 혁명 이후 브라질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임시정부 시기 동안 강력한 중앙집권 조치를 단행하고 국가 관료제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바르가스 시대 임시정부(1930~1934): 권력 집중과 개혁의 시작

임시정부란 무엇인가?

임시정부(Governo Provisório)는 바르가스 시대(Era Vargas)의 첫 번째 시기로, 1930년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1930년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면서 시작되어 1934년 그가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재선출되면서 종료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후 바르가스 시대 전체를 특징지을 권력 집중 조치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핵심 요약

바르가스는 1930년 혁명을 통해 워싱턴 루이스(Washington Luís) 대통령을 축출하고 브라질의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이 혁명은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 주 사이의 과두정치 세력 간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바르가스는 1930년 11월 '임시'라는 명분으로 정부를 수립했지만, 결국 무려 15년간 권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임시정부 시기 바르가스는 입법부를 약화시키고 행정부를 강화하는 등 최초의 중앙집권적 조치들을 단행했습니다. 지방 차원에서는 자신이 직접 임명한 주정부 관리자(인터벤토르)를 통해 권력 기반을 다졌으며, 노동부(Ministério do Trabalho) 창설을 비롯해 관료 조직도 크게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바르가스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선거 실시 거부는 상파울루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1932년 입헌혁명이 발생합니다. 이 혁명 이후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며 임시정부는 막을 내렸습니다.

임시정부의 주요 특징

임시정부 시기에 나타난 특징들은 바르가스 시대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 시기의 핵심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권력 집중: 바르가스는 입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 경제 위기 대응책: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브라질 경제에 미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으며, 그중 핵심은 국제 시장에서 커피 가격을 방어하는 것이었습니다.
  • 노동 정책: 노동부 창설을 주도하고 노동 입법을 확충하여 노동계급의 권리를 확대함으로써 대중적 지지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 관료제 확장: 국가의 필수 분야를 담당할 각종 기관과 부처를 신설했습니다.
  • 정치적 타협 능력: 과두정치의 이탈 세력(미나스제라이스, 히우그란지두술 출신)과 테넨티스모(과두세력에 반대하던 젊은 장교 그룹)의 지원을 결집하며 정치적 협상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30년 혁명과 임시정부의 탄생

바르가스의 권력 장악은 1930년 혁명과 직결됩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바르가스는 연방 하원의원과 재무장관을 역임한 인물이었습니다. 1930년 혁명은 과두세력 간의 권력 다툼에 더해, 이러한 과두정치의 지배를 타파하려는 세력의 노력이 결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1920년대는 과두정치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시기였습니다. 과두세력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정치 세력들이 등장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브라질 육군의 젊은 장교들 사이에서 생겨난 테넨티스모(tenentismo) 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정선거 없는 공정한 선거 실시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정치 질서는 1930년 대통령 선거 후보 지명 과정에서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커피 우유 정책(café com leite)'이라 불리던 관례에 따르면, 워싱턴 루이스 대통령은 미나스제라이스 출신 후보(유력 후보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리베이루 지 안드라다)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결국 상파울루 출신의 줄리우 프레스치(Júlio Prestes)를 지명하고 말았습니다.

이 결정으로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 간의 동맹은 깨졌습니다. 미나스제라이스는 또 다른 과두세력인 히우그란지두술과 손잡고 줄리우 프레스치에 맞서 제툴리우 바르가스를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바르가스의 선거 슬로건은 자유동맹(Aliança Liberal)이었으며, 부통령 후보는 주앙 페소아(João Pessoa)였습니다.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을 벌였지만, 자유동맹은 상파울루 후보를 꺾지 못했고 결국 줄리우 프레스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바르가스를 포함한 일부 세력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당선인과의 타협에 나섰지만, 자유동맹의 또 다른 세력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 루이스와 줄리우 프레스치를 겨냥한 이 음모에는 폭동을 정당화할 명분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그 도화선은 주앙 단타스가 제공했습니다. 그는 헤시피의 한 빵집에서 바르가스의 러닝메이트였던 주앙 페소아를 살해한 것입니다.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는 파라이바 주의 지역 정치 갈등과 사적인 감정 문제가 얽혀 있었습니다.

비록 선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주앙 페소아 암살 사건은 봉기의 명분으로 활용되었고, 마침내 1930년 10월 3일 워싱턴 루이스 정부에 대한 군사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1930년 혁명은 과두세력의 이탈 세력(미나스제라이스·히우그란지두술)과 테넨티스모 세력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바르가스는 이 운동이 성공할 것이라 판단되자 참여하여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10월 24일, 워싱턴 루이스는 대통령직에서 축출되었고 줄리우 프레스치의 취임은 저지되었습니다. 이후 임시 군사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다가, 11월 3일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대통령에 임명되었습니다. 바르가스가 브라질을 통치하게 될 15년의 역사가 이 순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개혁과 권력 강화

이 시기의 이름이 말해주듯, 바르가스 정부는 원래 임시 성격을 띠어야 했습니다. 당초 계획은 바르가스 정부 출범 후 입헌회의를 구성해 1891년 헌법을 대체하고, 곧이어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르가스 본인에게는 다른 목표가 있었습니다. 권력을 공고히 하고 집권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그의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역사가 토머스 스키드모어(Thomas Skidmore)는 바르가스가 집권 초기에 권력을 집중시킨 행보를 1929년 경제 위기를 근거로 정당화했다고 분석합니다.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바르가스의 행보는 권위주의로 기울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국회의 해산과 각 주 및 지방자치체 의회의 해산입니다. 입법부가 약화된 가운데, 바르가스는 각 주를 통치할 인터벤토르(interventor), 즉 자신이 직접 임명한 관리자를 통해 지방을 장악했습니다.

바르가스는 국가 운영의 여러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중요한 부처와 기관을 신설하며 관료 조직을 확장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노동 분야였습니다. 1930년 11월 노동부를 창설하고 노동 입법에 중요한 변화를 도입했습니다. 하루 노동 시간을 8시간으로 규제하고, 노동수첩(carteira de trabalho) 제도를 만들었으며, 유급 휴가권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선거제도 개혁: 1932년 선거법

바르가스의 장기 집권 기도와 중앙집권 조치는 불만과 반발을 낳았습니다. 가장 큰 반발은 상파울루에서 일어났는데, 이 주의 과두세력이 1930년 혁명과 바르가스 집권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상파울루 측의 핵심 요구는 입헌회의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 실시, 그리고 이어지는 새로운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바르가스는 이러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1932년 초 선거법(Código Eleitoral)을 제정했는데, 이는 브라질 선거제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선거법은 제1공화국 시절 만연했던 부정선거의 가능성을 크게 줄였습니다. 비밀투표제가 도입되었고, 이 분야를 관할할 선거사법부가 창설되었으며, 투표가 의무화되었고 여성에게도 보통선거권이 부여되었습니다.

1932년 입헌혁명(상파울루 봉기)

그럼에도 이러한 조치들만으로는 상파울루의 정부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에 부족했습니다. 상파울루 세력은 입헌주의라는 명분으로 바르가스 정권에 맞섰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이유들도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상파울루 사람들은 해당 주에 파견된 인터벤토르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고, 상파울루 출신의 민간인 관리자 임명을 요구했습니다. 커피 문제도 걸림돌이었습니다. 바르가스가 커피 산업의 관리를 연방 정부의 책무로 넘긴 것입니다. 1932년 전국커피협의회(Conselho Nacional do Café)가 창설되면서 이러한 변화가 공식화되었습니다.

이 모든 요인이 상파울루의 불만을 증폭시켰고, 반정부 운동은 분리주의적 성격까지 띠며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상파울루는 바르가스에 불만을 품은 미나스제라이스와 히우그란지두술의 지원을 기대했지만, 1932년 7월 9일 봉기가 일어났을 때 상파울루는 홀로 싸워야 했습니다. 이 봉기가 바로 1932년 입헌혁명입니다.

상파울루 사회 전체의 동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시민들은 자원 입대했고, 여성들은 무기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을 기부하는 등 열정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전투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약 석 달간의 전투 끝에 상파울루 세력은 패배했고, 10월 1일 정부군에 항복했습니다.

바르가스는 봉기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추방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는 한편, 상파울루 측 요구의 일부도 수용했습니다. 그 결과 상파울루 출신 공무원이 인터벤토르로 임명되었고, 정부는 1933년에 입헌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934년 헌법과 임시정부의 종료

임시정부는 1934년 새 헌법이 공포되면서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새 헌법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 헌법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머스 스키드모어는 1934년 헌법에 대해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경제적 개혁주의의 혼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헌법은 바르가스 자신을 화나게 했습니다. 헌법이 상당히 자유주의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대통령 경력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헌법 공포와 함께 바르가스는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재선출되었지만, 재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1938년에는 권력을 다른 정치인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물론 이후 바르가스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잘 알려진 역사입니다.

참고 자료

|1| SKIDMORE, Thomas E. A History of Brazil. Rio de Janeiro: Paz e Terra, 1998, p. 155.
|2| SCHWARCZ, Lilia Moritz; STARLING, Heloísa Murgel. Brazil: A Biography. São Paulo: Companhia das Letras, 2015, p. 362.
|3| SKIDMORE, Thomas E. A History of Brazil. Rio de Janeiro: Paz e Terra, 1998, p.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