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살 우타르(Asal Uttar) 전투는 1965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벌어진 세계 군사사에 남은 최대 규모의 전차전 중 하나였습니다. 1965년 9월, 파키스탄군은 대규모 병력으로 인도를 침공해 국경에서 5km 깊숙이 진입했고, 펀자브 지역의 작은 마을 켐 카란(Khem Karan)을 점령했습니다.
파키스탄군은 제1기갑사단과 제11보병사단을 투입해 인도 영토를 침공했습니다. 이에 맞선 인도군 제4산악사단은 압박에 밀려 후퇴하면서도 조직력을 유지했고, 반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새로운 방어선을 편성했습니다.
파키스탄군은 인도령 안에 거점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입지는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전과를 확대하려면 인도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주력 전차부대를 전진시켜야만 했습니다.
양측의 전력
인도군 제4산악사단은 여섯 개 보병대대와 함께 영국제 25파운더 야포, 3.7인치 곡사포, 5.5인치 중곡사포, 120mm 박격포로 무장한 포병 부대를 보유했습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M4 셔먼 전차 두 개 집단이 직접 지원에 나섰습니다. 사단장은 구르바스 싱(Gurbaksh Singh) 소장이었습니다.
제4산악사단은 테오가이 준장이 지휘하는 제2독립기갑여단으로 추가 증강되었으며, 이 부대는 센추리온(Centurion) 전차 1개 중대, AMX-13 경전차 1개 중대, 포병 중대 1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나시르 아흐마드 칸(Nasir Ahmed Khan) 소장이 지휘하는 파키스탄군 제1기갑사단은 낡은 M24 채피 경전차로 무장한 정찰여단, M47 패튼 전차 여단과 기계화보병대대를 둔 제3기갑여단, M47 전차 2개 연대와 기계화대대를 둔 제4기갑연대, 제5기갑연대로 구성되었으며, 포병 4개 중대, 대공중대, 공병대대도 함께 운용했습니다. 기계화보병은 M113 장갑차를 타고 기동했습니다.
파키스탄군 제11보병사단은 직접 지원용 셔먼 전차여단, 정찰여단, 포병 5개 중대, 통신대대, 공병대대, 보병 7개 대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파키스탄군의 공세
9월 8일, 파키스탄군이 공격에 나섰습니다. 전차 4대(M24 2대, M47 2대)가 선두에 서고 포병의 엄호 아래 파키스탄군은 인도군 진지에서 900m까지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인도군은 제4산악사단 소속 M4 셔먼 전차들을 은폐물 뒤에 배치해 두었고, 이들이 적에게 일제히 포문을 열었습니다. 낡은 셔먼 전차들은 4대의 손실만 감수하고 적 전차 11대를 격파했고, 파키스탄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키스탄군은 선견대와 M47 전차 분견대로 새로운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전히 20파운더(84mm) 포를 장착한 인도군 센추리온 전차들과 마주쳤습니다. 인도 전차들은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M47 5대와 M24 1대를 파괴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파키스탄군의 공격도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파키스탄군은 9월 9일 새벽 다시 공격에 나섰지만, 인도군이 사탕수수밭에 물을 끌어들여 진창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동이 트자 파키스탄군의 포병과 공군이 인도 진지를 폭격하기 시작했지만, 인도군은 이미 조직적인 진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는 다시 미미했습니다.
교묘하게 짜인 함정
그럼에도 파키스탄군은 공세를 이어갔으나 또다시 격퇴당했고, 진창에 빠진 전차들은 인도군 무반동포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인도군 제2독립기갑여단 지휘관은 파키스탄군의 대규모 공격을 예상하고 철저히 대비했습니다. 방어진형 양익에 AMX-13 전차를 배치해 전방위 사격이 가능하도록 했고, 동시에 센추리온 전차들을 반원형 진형 두 개로 편성해 파키스탄 전차에 집중 화망을 쏟아붓도록 했습니다.
함정의 존재를 모른 채 파키스탄군은 10일에 공격에 나섰지만, 곧 전차들이 잇달아 불타올랐습니다. 단 몇 분 만에 파키스탄군 M47 전차 13대가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파키스탄군 제1보병사단장이 최전선으로 나아가 병사들을 독려하던 중 탈것이 피격되어 부상을 입었고, 이후 파키스탄군의 공격은 방향성과 조직력을 모두 상실했습니다.
다음 날 인도군은 센추리온 전차를 선봉으로 삼아 역공에 나섰습니다. 파키스탄군은 공황 상태로 도주하며 전차와 장갑차를 내버렸고, 인도군은 전차 외에도 파키스탄군 지휘관과 참모진 상당수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압도적인 결과
결국 파키스탄군은 총 97대의 전차를 잃었는데, 그중 75대는 이론적으로 인도군이 보유한 어떤 전차보다 우수한 M47 패튼이었습니다. 반면 인도 전차의 손실은 겨우 10대에 그쳤습니다.
파키스탄군의 패배는 놀라워 보이지만 사실은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파키스탄군은 험준하고 진창인 지형에서 보병의 충분한 지원 없이 전차를 운용하며, 이미 진지를 구축하고 기다리고 있던 인도군을 상대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투 덕분에 아살 우타르는 오늘날 '인도판 쿠르스크'라고 불리며 군사사에 한 획을 긋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