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값비싼 교훈에서 탄생한 소총
영국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값비싼 피를 흘리며 강선 소총(rifle)의 가치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당시 미국 저격병들이 운용하던 강선 총열 소총은 정규군을 크게 괴롭혔고, 이 교훈을 바탕으로 1800년 에제키엘 베이커(Ezekiel Baker)의 설계가 실험 소총 부대(Experimental Rifle Corps)의 공식 장비로 선정되었습니다.
선정 과정의 시험 사격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270m 거리에 놓인 지름 1.8m의 원형 목표물을 향해 12발을 발사했는데, 그중 무려 11발이 적중한 것입니다. 이후 1800년부터 1837년까지 여러 제조업체가 다양한 개량 모델을 생산하고 평가했지만, 이 총은 언제나 '베이커 소총(Baker Rifle)'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총의 무게는 약 4kg, 구경은 15.9mm였습니다.
정예 부대의 상징이 되다
베이커 소총은 주로 나폴레옹 전쟁 기간 영국군과 함께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갔습니다. '더 라이플스(The Rifles)'로 알려진 정예 95연대를 비롯해, 국왕 독일 군단(King's German Legion)의 경보병 대대, 그리고 여러 연대 산하의 정예 중대와 대대가 이 소총을 장비했습니다. 여기에는 60연대 5대대, 60연대 6·7대대의 정예 저격 중대, 23소총병(Fusilier) 연대, 그리고 국왕 독일 군단 각 대대의 저격수들도 포함됩니다.
흥미롭게도 이 소총의 가장 역설적인 사용자는 제10경기병(후사르) 연대였습니다.
느린 발사 속도, 그러나 결정적인 명중률
총열 내부의 강선 탓에 베이커 소총은 일반 머스킷총보다 장전이 까다로웠고, 발사 속도 역시 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훈련된 병사는 분당 2발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영국군의 표준 소총인 '브라운 베스(Brown Bess)' 머스킷총은 그 두 배에 달하는 발사 속도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기의 진정한 강점은 단연코 정확성이었습니다.
역사에 남은 저격의 순간
숙련된 사수의 손에 들어간 베이커 소총은 일반 머스킷총으로는 응사조차 불가능한 거리에서 적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적군은 그 거리에서 사격의 원천조차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809년 스페인 카카베요스(Cacabellos) 전투에서 펼쳐진 저격입니다. 95연대 1대대 소속 소총병 토머스 플런켓(Thomas Plunkett)은 무려 550m 거리에서 프랑스군 콜베르 장군과 그의 참모 2명을 연달아 명중시켰고,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 저격술의 역사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