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방어전의 교과서, 에두아르트 후크
독일군의 완강한 방어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기관총 사수 상등병 에두아르트 후크(Eduard Hoog)입니다. 그는 1941년 제5보병사단에 이병으로 입대해 소련 침공 작전에 참전했습니다.
1942년 2월, 그가 속한 사단은 엽병(Jäger) 사단으로 개편되었고, 후크는 제75엽병연대 1중대에서 보인 활약을 인정받아 상등병으로 진급했습니다.
스타라야 루사의 최전선
그의 사단은 노브고로드 인근 스타라야 루사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1943년 9월 2일, 사단은 곧 있을 소련군의 공격에 대비해 진지를 구축한 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누적된 손실로 분대의 전력은 크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결국 후크는 홀로 참호에 남아 MG42 기관총을 들고 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옆 분대의 기관총이 그의 진지 측면을 엄호하고 있어 명분 없는 불안은 없었습니다.
측면의 침묵, 그리고 70명의 적
곧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소련군의 포격이 독일군 진지를 갈아댔고, 이동 포격막 뒤로 소련 보병 대부대가 밀려왔습니다. 아비규환 속에서 후크는 측면을 엄호하던 기관총이 침묵한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즉시 기관총을 잡고 옆 분대 진지로 내달렸습니다. 달리던 도중 약 70명의 소련 병사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후크는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어떠한 엄호도 받지 않은 채 어깨에 걸친 기관총으로 발포를 시작했고, 기습을 당한 소련군 일부가 그의 탄막에 쓰러졌습니다.
나머지 병력은 후퇴했습니다. 후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전투 진지를 확보했고, 그곳에서 옆 분대 기관총 조작원들이 모두 전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일곱 번째 공격까지
이후 후크는 단신으로 소련군의 공격을 여섯 차례나 격퇴했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습니다. 일곱 번째 공격은 더욱 정교하게 조직되었고, 아군 기관총의 화력 지원까지 받았습니다.
집중 포격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후크의 참호로 소련 보병들이 30m 거리까지 접근해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반격하려던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관총이 고장 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후크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수류탄으로 적의 공격을 억제하며 결정적인 몇 분을 버텼고, 소련군이 돌격을 준비하는 바로 그 순간 기관총을 분해·청소·재조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련군이 참호에 닿기 직전, 후크의 MG42가 다시 불을 뿜으며 죽음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참호 주변에 쌓인 60구의 시신
후크는 증원 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수 시간 동안 홀로 진지를 사수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그의 참호 주변에서는 소련군 시신 60구가 확인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기관총 사수가 만들어낸, 믿기 힘든 방어전의 기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