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스 전투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투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은 막대한 피를 흘렸고 심각한 굴욕을 당했다. 카르스 전투는 페르시아-오스만 전쟁(1743~1746)의 마지막 대규모 충돌이었으며, 위대한 페르시아 황제이자 뛰어난 장군인 나디르 샤의 최고의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된다.
병상에서 지휘한 나디르 샤
1745년 여름, 나디르는 두 개의 대규모 오스만 군대가 자신의 영토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 부대는 카르스로, 다른 부대는 모술로 진격하고 있었다. 다게스탄의 험난한 원정 이후 그 자신도 중병에 걸린 상태였지만, 나디르는 병사들에게 들것에 실려 옮겨지면서까지 이중의 위협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그는 군대 일부를 모술 방어에 배치하고, 직접 약 8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카르스로 향했다.
같은 시기 북부 오스만군을 지휘하던 예겐 무함마드 파샤는 1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카르스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디르는 그를 추격해 제게바르드 언덕에 진영을 구축했다. 오스만 파샤는 페르시아 진영에 접근하여, 적진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요새화된 진영 건설을 명령했다.
양군의 전력
8월 9일, 예겐 파샤는 요새 진영을 벗어나 전군을 이끌고 페르시아군과 마주 보는 진형을 갖췄다. 그는 주로 예니체리로 구성된 4만 명의 보병을 중앙에 배치하고, 좌우 익에 각각 5만 명씩 총 10만 명의 기병을 배치했다.
나디르 역시 4만 명의 보병과 4만 명의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보병을 예니체리와 정면으로 마주 배치하고, 기병 부대로 측면을 엄호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많고 정예인 기병들을 후방에 예비대로 남겨두었다.
평원의 학살
당시 페르시아 보병은 고도로 훈련된 부대였다. 나디르는 이를 활용해 예니체리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페르시아군은 사격 거리 안으로 접근해 일제 사격을 퍼붓고, 이어 칼을 들고 튀르크인들에게 돌격했다.
예니체리도 같은 방식으로 맞섰고, 이윽고 두 보병 집단은 격렬한 백병전을 벌였다. 예겐 파샤는 질적으로 페르시아 기병보다 열세인 자신의 대규모 기병으로 공격하지 않고, 보병전이 저절로 전개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전투는 이런 양상으로 계속되다가 오후가 되자, 나디르는 개입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말에 올라타 정예 기병대의 선두에 섰고, 예겐이 우익의 보병과 기병 사이에 잘못 만들어 둔 틈을 통과하며 튀르크 보병의 우측 측면을 강타했다.
나디르의 수천 명에 이르는 결연한 기병들의 맹공격은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용감한 나디르는 적의 포화에 말 두 필을 잃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의 적시적인 돌격은 목적을 달성했다. 튀르크군은 마비 상태에 빠졌다. 1만 5천 명의 기병 부대는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수천 명의 튀르크 병사가 쓰러졌고, 나머지는 혼비백산하여 후퇴했다.
철벽의 포위망
그러나 어둠이 내리자 나디르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여명과 함께 연대 하나를 파견해 아직 부상으로 신음하던 튀르크군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점차 나디르는 튀르크 진영 주위에 철벽 같은 포위망을 구축했고, 튀르크군은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탈출에 실패했다.
튀르크 지휘관은 포위를 돌파하기 위해 포병을 대규모로 동원하려 했다. 그러나 나디르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고, 더 잘 훈련된 페르시아 궁수들이 화력 대결에서 손쉽게 승리했다. 예겐은 8월 10일 밤 군대와 함께 몰래 빠져나가려 했다. 나디르는 튀르크군이 요새 진영을 떠나도록 내버려 두었지만, 방어하기 어려운 드넓은 평야에서 그들을 다시 포위했다.
움직일 수 없게 된 예겐과 그의 병사들은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채, 모술로 진격 중이던 또 다른 튀르크군의 지원만을 기다리며 포위된 채 머물렀다. 그러나 8월 19일, 나디르는 그 튀르크군마저 격파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는 이제 예겐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페르시아 사절들이 임시 튀르크 진영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병사들은 이미 반란을 일으킨 상태였고, 예겐은 자결했거나 자신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한 채 죽어 있었다. 튀르크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을 보자 무기와 짐이 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언자의 백성들이여, 도망쳐라!"라고 외치며 우왕좌왕 흩어져 도망쳤다. 물론 페르시아 기병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해 섬멸했다.
완벽한 승리
이렇게 튀르크군의 완전한 궤멸과 함께 전투는 막을 내렸다. 페르시아군의 사상자는 8천 명으로, 대부분 전투 첫날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 튀르크군은 사망, 부상, 포로를 합쳐 무려 5만 명을 잃었다. 나디르 샤에게 있어 이는 명실상부한 완벽한 승리였다.

▲ 카르스 전투, 1745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