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스스로의 역사를 쓴 몇 안 되는 민족 중 하나입니다. 수 세기 동안 그들은 단순히 생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뛰어난 무술 문화를 바탕으로 이웃 부족들을 제압하며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립해 왔습니다.
북에서 내려온 목축민, 메로에 왕국의 후손?
마사이족은 18세기에 북쪽에서 남하하여 현재의 케냐와 탄자니아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학자들은 그들이 고대 상(上)나일 유역의 주민, 즉 유명한 메로에 왕국의 사람들과 인종적으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마사이족은 가축 떼를 치며 살았는데, 소는 개인과 부족 모두에게 있어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연발 화기를 장비한 유럽인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확실한 주인이었습니다. 머스킷총으로 무장한 아랍인들조차 그들 앞에서 연전연패할 정도였습니다.
16개 부족과 끊임없는 전쟁
마사이족은 16개의 주요 부족 집단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부족 간에도 다툼이 잦았지만, 주된 적은 이웃 아프리카 민족, 그리고 무엇보다 아랍 노예 상인들이었습니다. 부족 간 분쟁의 큰 원인은 가축 약탈이었고, 아랍인과의 충돌 원인은 더욱 명백했습니다. 아랍인들은 팔아넘길 노예를 찾아 마사이 마을을 습격했기 때문입니다.
나이 계급으로 짜인 전사 조직
마사이족의 군사 조직은 철저히 부족 단위였으며, 군대는 준족(Zulu)과 흡사하게 나이 계급별 부대로 편성되었습니다. 젊은 마사이는 전사로 불리고 무기를 받기 전에 일정한 성인 의식을 거쳐야 했습니다.
의식을 마친 뒤 그는 비로소 전사가 되어 자신의 무기를 당당히 차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나무 골조에 소가죽을 덮어 만든 길이 2미터가 넘는 커다란 방패, 그리고 거의 45센티미터 길이에 10센티미터 폭에 달하는 치명적인 철 창 끝을 얹은 나무 자루의 창이 그것이었습니다.
방패는 전사의 발끝부터 목까지를 가렸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여러 겹의 가죽은 중·장거리에서 날아오는 머스킷 총알의 위력조차 막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만이 남자의 직업
마사이족은 무장한 상비군을 유지했습니다.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갔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은 여성, 아이, 노인에게 맡겨졌고, 남자의 유일한 임무는 전쟁이었습니다.
커다란 방패 뒤에 몸을 숨긴 마사이 전사는 적에게 다가가 마치 고대 그리스 중장보병처럼 적을 덮치고 충격을 가한 뒤 창으로 찌르곤 했습니다. 화기로 무장한 적을 상대로는 어떤 물리적 엄폐물이든 활용해 도약하듯 접근한 뒤 최후의 돌격을 감행했습니다. 지형에 엄폐물이 없으면 적이 발포할 때는 땅에 엎드리고, 적이 재장전하는 순간에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전법도 익혔습니다.
머스킷을 든 적에게는 이러한 전술이 상당히 잘 통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충돌하게 된 연발 화기로 무장한 유럽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연발총은 머스킷보다 훨씬 빠르게 재장전할 수 있었고, 무시무시한 관통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날개' 진형
마사이족은 전투 시 '독수리의 날개'라 부르는 인간 쐐기 진형을 이루었습니다. 이 진형에서는 가장 용맹한 전사들이 중앙의 쐐기 대열에 적을 마주 보고 섰고, 좌우와 후방은 같은 형태의 부대가 지원했습니다.
그들은 경이로운 속도로 적을 향해 돌격했습니다. 걸어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인의 낙타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웃 부족들을 상대로는 그들의 무기와 전술이 대체로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다만 적이 방어 공사를 갖춘 경우에는 고전했습니다. 아랍인을 상대로는 앞서 설명한 전술을 적용했습니다. 1877년 마사이족은 2,000명 규모의 아랍 상단을 공격해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시켰고, 1887년에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2,000명이 호위하는 또 다른 아랍 상단을 학살했습니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유럽인과의 조우: 불필요했던 도발
유럽인들에게 마사이족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이 이 분위기를 깨뜨립니다. 108명으로 구성된 독일 탐험대가 아무런 필요 없이 마사이 영토에 들어섰고, 마사이족이 예로부터 통행하는 사람들에게 현물로 받던 통행세를 지불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독일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식량을 강탈할 목적으로 마을 하나를 습격해 여성과 아이들까지 살해했습니다.
마사이 전사들은 이들을 추격했지만, 처음으로 상대의 연발소총 앞에서 전술이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인들과 그 추종자들은 요새화된 아랍 진영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도망쳐야 했습니다.
영국과의 관계, 그리고 오늘날
마사이족은 대체로 영국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양측의 충돌은 1894년 작은 규모로 한 번 있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1895년에는 영국군이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마사이 부대를 자기 군대에 편입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동아프리카 영국 식민 행정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마사이족은 서구 문명이 그들의 삶의 터전까지 스며든 만큼, 가능한 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똑같이 자랑스러운 백성입니다. 사바나에서 유일하게 '백인'에게 복종하지 않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