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애돌프 쇠더만(William Adolph Söderman)은 1912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육군에 입대해 유럽 전선으로 배치되었고, 1944년 12월 17일 그는 눈 내리는 아르덴 숲에서 독일군 전차와 맞서 싸우는 바주카 사수가 되어 있었다.
당시 상등병(lance corporal)이었던 쇠더만은 미 제2보병사단 제9보병연대 K중대 소속으로 바주카 분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 용감하고 명예심 강한 병사였다.
눈보라 속 홀로 남은 사수
1944년 12월 17일 저녁, 독일 제12SS기갑사단이 벨기에 로헤라트(현 뷜링겐 부근)의 요충지 교차로를 방어하던 미군 515명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쇠더만은 탄약 운반병과 함께 매복해 있었다.
그러나 독일군의 포화에 운반병이 부상을 입었고, 쇠더만은 홀로 남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밤새 자신의 위치를 지켰다. 독일군 전차 종대가 접근하자 그는 정면으로 맞서 선두 전차를 격파했다. 해당 전차는 V호 전차 판터로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자료에서는 IV호 구축전차(Jagdpanzer IV)로 보기도 한다.
재차 밀려오는 전차부대
다음 날인 12월 18일 새벽, 또 다른 독일군 전차 종대가 인근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쇠더만은 쏟아지는 포화를 무시한 채 일어서서 선두 전차를 향해 바주카를 발사했고, 이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지형상 통행이 어려웠던 나머지 전차들은 고스란히 멈춰 서고 말았다.
이후 쇠더만은 격렬한 포화 속을 뚫고 대대 방어진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는 A중대의 방어선이 이미 돌파되어 적이 같은 대대 소속 K중대 진지 바로 앞까지 몰려왔음을 목격했다.
소총과 바주카로 막아낸 독일군 소대
독일군 소대 하나가 접근하는 것을 발견한 쇠더만은 즉시 M1 소총을 들어 빠르고 정확하게 사격을 개시했다. 독일군은 기습을 당한 듯 혼비백산했고, 여럿이 쓰러진 나머지는 도주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그는 도주하는 병력에게 바주카 로켓을 발사해 최소 3명을 더 쓰러뜨렸다.
한편 대대에는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중대가 철수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다시 독일군 전차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쇠더만 스스로 나서서 동료들의 후퇴를 바주카로 엄호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다시 적 전차와 맞섰고 단 한 발로 진격하는 전차를 명중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독일군 전차의 기관총 사격에 오른쪽 어깨에 중상을 입은 것이다.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된 그는 온몸에 피를 묻힌 채 기어서 미군 진지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명예훈장과 평온한 말년
쇠더만은 살아남았고,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미국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전역 후 그는 결혼해 두 자녀를 두었으며, 1980년 고향인 코네티컷주 웨스트헤이븐에서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공훈을 기려 2000년에는 미 해군 군함 '쇠더만' 호(USS Söderman)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