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상과 공중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을 상대로 소형 함정이 도망치는 것은 극히 어렵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2월 27일, 자바 해에서 일본군은 연합국 해군을 완파했습니다.
이 참사에서 네 척의 소형 네덜란드 함정만이 살아남았지만, 그중 세 척은 며칠 안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유일하게 탈출에 성한 배가 바로 소형 소해함 HNLMS 아브라함 크라인센호였습니다.
일본군의 눈을 피할 방법은 단 하나
1937년 취역한 이 배는 길이 56m, 배수량 525톤, 승무원 45명 규모로, 76mm 함포 1문과 20mm 연장 기관총 2문, 폭뢰 및 기뢰 설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최대 속력은 15노트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배가 일본군의 군함과 항공기에게는 먹잇감 그 자체였습니다. 생존을 위한 유일한 희망은 몸을 숨긴 채, 가능하다면 호주로 항해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배'가 아니라 '섬'이 되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선원들은 미친 짓이라 여겨질 생각을 해냈습니다. 바로 배를 통째로 섬으로 변장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발상은 들리는 만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 해역에는 18,000개에 달하는 섬과 작은 섬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이 배만 한 크기의 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는 작은 섬에 접안했고, 선원들은 필사적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식물을 뿌리째 뽑아 배로 옮겼습니다. 가장 큰 위협은 일본군 항공기였기 때문에 배 전체를 식물로 빈틈없이 덮어야 했습니다.
막대한 노력 끝에 역사상 유례없는 함선 변장이 완성되었습니다. 배는 작은 열대 정글이 되었고, 모든 금속 부분은 어울리게 도색되어 마치 실제 섬 옆에 닿아 있는 하나의 섬, 아니 섬의 연장부처럼 보였습니다.
밤에만 움직인 8일간의 대탈주
낮에는 다른 섬 옆에 정박해 미동도 하지 않았고, 해질녘에야 호주를 향해 조용히 출항했습니다. 이렇게 8일 밤낮을 버티며 배는 마침내 호주에 도착해 구조되었습니다.
그 광활한 해역에서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연합군 군함이 된 것입니다. 터무니없어 보였던 계획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전사(戰士)이자 기념물로
호주에서 수리된 이 배는 대잠 ASDIC(소나) 시스템을 장착하고 호주 해군에 편입되어 대잠 호위함으로 계속 싸웠습니다. 승무원은 영국인, 호주인, 네덜란드인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심지어 영국인들이 자국 국왕의 초상화를 배에 걸려고 하는 반면 네덜란드인들은 여왕의 초상화를 그대로 두겠다고 맞서며 긴장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943년 1월 26일, 이 배는 일본 잠수함을 추격하던 중 폭뢰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적 함정을 격침시키지는 못했지만, 아브라함 크라인센호가 호위하던 연합군 수송선단에 대한 공격은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1943년 5월 5일 배는 네덜란드 해군에 반환되어 종전까지 소해 작전 등에 참여했습니다. 전후에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우던 인도네시아 혁명세력에 대한 작전에도 동원되었습니다.
1951년 네덜란드로 돌아온 이 배는 1960년 퇴역했으며, 이후 네덜란드 해군 사관생도들을 위한 해상 훈련교로 활용되었습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헤이그에 정박해 있다가 로테르담으로 옮겨졌습니다.
1995년 이 배는 네덜란드 해양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된 이 배는 현재 네덜란드 덴헬더에서 기념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의 아브라함 크라인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