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 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최초의 나라

흥미롭게도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은 로마네스크의 소박하고 원초적인 아름다움, 고딕의 정교하고 전형적인 웅장함, 르네상스의 고전적 정취, 혹은 바로크의 압도적인 화려함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너무나 이른 시대에 세워졌고 이후 여러 차례 개축을 거치면서 특정 양식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르메니아의 성지이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그레고리안 교회)의 중심지인 에치미아진(Ejmiatsin) 대성당입니다.

황금 망치의 환시로 세워진 성당

이 성당은 301년부터 303년 사이에 그레고리 1세, 일명 '일러미네이터(밝히는 자)'의 명에 따라 세워졌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와 황금 망치로 땅을 내리치며 성당을 지을 장소를 가리키는 환시를 보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에치미아진에는 대성당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합 단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외관은 17세기 개축 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부에는 아르메니아 조각의 걸작들과 함께 노아의 방주 목재, 롱기누스의 창 같은 기이한 성유물들이 보존된 대성당 본당을 비롯해, 7세기에 건립된 산타 리프시메 성당, 산타 가야네 성당, 초가가트 성당, 아스트바차친 성당, 그리고 박물관과 신학교까지 포함됩니다. 이 단지 전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 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최초의 나라

기독교 최초의 국교는 로마가 아니라 아르메니아

흔히 기독교를 공식 종교, 즉 국교로 선포한 첫 번째 국가는 로마라고 믿어집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테트라키아, 삼두정, 이두정으로 분열되던 시기에도 로마 제국은 그 황제에 의해 재통일되었고 세계의 중심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즉위 7년째 되던 그 해에 새로운 종교를 국교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임종 직전에야 세례를 받았으며, 다만 이미 하나의 현실이 된 것, 즉 로마 시민들 사이에 기독교 신앙이 확산되고 보편화된 상황을 합법화했을 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 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최초의 나라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최초의 나라를 찾으려면 지리적으로는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 아르메니아를 주목해야 하고, 연대적으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정확한 날짜는 서기 301년입니다. 그해 트리다테스 3세 왕이 그레고리 1세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레고리 1세는 아르메니아 사도 그레고리안 교회, 즉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창시자이자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신앙은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에 서명하기 12년 전에,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1세가 380년에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삼기보다 거의 80년이나 앞서 공식화된 것입니다.

사도들의 복음이 닿은 땅

전승에 따르면, 코카서스 남부에 위치한 이 지역은 히타이트, 미탄니, 프뤼기아, 셀레우코스 등이 활동했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이었습니다. 오론트 왕조나 아르타셰스 왕조 같은 강력한 왕조가 흥했고, 티그라네스 대왕의 통치 아래 최전성기를 누렸다가 파르티아와 로마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 땅이 유다 타대오와 바르톨로메오 사도에 의해 복음화되었습니다. 두 사도는 놀라운 속도로 성공을 거두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했고, 그 사업은 제멘도스, 아트르네르세, 무셰, 샤바르시, 레본디오스, 메루얀 등 여러 총대주교들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일러미네이터 그레고리의 생애

이러한 배경 속에 그레고리가 등장합니다. 그는 파르티아 귀족 가문, 정확히는 아르타셰스 왕조를 이은 아르사케스 왕조 출신으로, 그의 가문은 호스로에스 2세 살해 사건 이후 몰락했습니다. 그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현재 튀르키예의 카이세리)에서 기독교 귀족 에우탈리우스에게 교육받았는데, 이는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오크헤가 아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키우기를 바랐기 때문에 맡겨진 것이었습니다.

깊은 사도적 소명을 품고 있었음에도 그레고리는 같은 신앙을 가진 미리암이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지만, 7년 후 가정생활을 내려놓고 설교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 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최초의 나라

그때까지 그레고리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불운한 왕위를 계승한 트리다테스 3세의 복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무대에 나서자 곧 발각되어 감옥에 갇히는데, 부친의 죄값을 치르게 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나히트 — 미트라와 함께 아르메니아 만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신격으로 여겨진 풍요의 여신 — 에 대한 꽃 바침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고문을 당하고 처형 직전까지 몰린 그는 아라라트산 기슭의 지하 감옥, 무덤에 가까운 좁은 공간에서 14년을 유폐되어 지냈습니다. 이 감옥은 식사를 줄 때만 열렸으며, 오늘날 그 자리에는 코르 비랍(Khor Virap) 수도원이 서 있습니다.

멧돼지처럼 변한 왕과 감옥 속 성인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오히려 그를 가둔 자에게 더 혹독했습니다.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수녀들을 살해한 뒤, 왕은 기묘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의 비서이자 연대기 작가였던 아가탄겔로스가 5세기에 집필한 『아르메니아인의 역사』와 『트리다테스의 역사』 — 이 사건들을 알 수 있는 주요 사료 — 는 왕이 야생 짐승, 정확히는 멧돼지처럼 행동하며 숲속에서 살았고 아무도 그를 궁전으로 데려올 수 없었다고 전합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그가 임상적 변랑증(lycanthropy)을 앓았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 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최초의 나라

그런데 왕의 여동생 호스로비두흐트가 한 꿈을 꾸게 됩니다. 아라라트 감옥에 갇힌 사람이 트리다테스를 치료할 수 있다는 꿈이었고, 절박했던 그녀는 이를 시험해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그레고리를 석방시키고 요양을 도운 뒤, 야성의 군주 앞에 그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오랜 원한을 잊은 그레고리는 왕의 치유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것을 명했고, 실제로 얼마 후 왕은 제정신을 되찾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군주는 그레고리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공식 국교로 선포했고, 301년에 스스로 세례를 받았으며 다음 해에는 그레고리에게 아르메니아 총대주교의 직위를 내렸습니다.

성인의 최후와 남겨진 유산

노년에 이른 그레고리는 직무를 아들 아리스타케스에게 물려주고 세부흐산의 동굴에서 은둔 생활에 들어갔으며, 330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여러 지역에 성유물로 나누어지기 위해 잔혹하게 분해되었고(손 하나는 에치미아진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강력하고 풍요로운 교회였습니다. 이교 신전들의 재산이 모두 교회 소유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다른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격렬한 종교적 융합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레고리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던 아나히트 여신은 훗날 성모 마리아와 동일시되었고, 오늘날 많은 아르메니아 여성들이 자신도 모른 채 역설적으로 이교 신격에서 유래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