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소수의 생존자만 남긴 전투… 로마에 맞선 용감한 벨가이족 네르비이의 영웅적 최후

소수의 생존자만 남긴 전투… 로마에 맞선 용감한 벨가이족 네르비이의 영웅적 최후

기원전 58년에서 5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참모진에는 불길한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기 시작했다. 벨가이족(고대 벨기에인)이 움직이고 있다는 경고였다. 벨가이족은 오늘날 프랑스 북부,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네덜란드 일부에 걸쳐 살던 부족들로, 카이사르는 이들을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 만나게 될 가장 강력한 적수로 여기고 있었다.

갈리아 최강의 부족, 네르비이

카이사르는 첫 번째 교전에서 벨가이족을 격파하고 각 부족들을 자신들의 영토로 되돌려보냈다. 그중 하나가 네르비이(Nervii) 부족이었다. 카이사르에 따르면 네르비이는 벨가이 부족 중 가장 흉포하고 맹렬한 부족으로, 인접한 아트레바테스족과 비로만두에스족까지 설득해 함께 싸우게 만들었다. 여기에 아투아투키족의 원군 도착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네르비이족의 땅은 삼브르 강(당시 '사비스'라 불림) 너머로 뻗어 있었으며, 그곳에는 울창한 숲과 수많은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기병이 없었던 네르비이족은 대신 관목과 가시 덤불로 울타리를 촘촘히 쌓고, 그 뒤에서 적 기병대의 공격에 맞서는 전술을 택했다.

사비스 강변의 대치

3일간의 행군 끝에 카이사르는 사비스 강 우안에 도달했다. 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네르비이족은 강 건너편에 상당한 병력으로 진영을 치고 로마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갈리아·벨가이 출신 정찰병 일부가 네르비이 진영으로 탈영해 로마군의 모든 동향을 알려준 것이다.

한편 카이사르는 6개 베테랑 군단을 선두에 세운 채 전투 대형 그대로 행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적합한 장소가 발견되었고, 그곳에 요새화된 야영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숲에서 쏟아져 나온 기습

그러던 어느 순간, 수천 명의 네르비이 전사들이 숲에서 쏟아져 나와 끔찍한 함성을 지르며 로마군에게 돌진했다. 그 기세에 로마군 선봉대는 순식간에 휩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은 야영지를 짓던 병사들 바로 곁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당황하지 않고 지휘관으로서의 모든 역량을 발휘했다. 압도적인 속도로 밀려오는 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6개 군단 병사들에게 무장할 신호를 보냈고, 말을 달려 요새 자재를 찾아 이탈했던 부대들을 소환했으며, 부대들에게 전투 대형을 갖추라고 명령하고 사기를 북돋았다. 그 무렵 적은 이미 150~2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많은 병사들이 투구를 쓸 시간조차 없었고 방패도 방수 가죽 커버에서 벗겨내지 못한 상태였지만, 철저한 훈련과 규율, 그리고 지휘관의 용기와 침착함 덕분에 로마군은 대열을 유지한 채 적과 교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제9군단과 제10군단의 병사들은 투창을 일제히 던져 적의 돌격을 저지한 뒤 즉각 반격에 나섰다. 로마 투창 세례에 큰 피해를 입고 돌격의 추진력이 꺾인 벨가이 전사들은 곧 물러나기 시작했고, 로마군은 강을 건너 그 너머까지 추격을 이어갔다.

붕괴 직전의 로마군

그러나 전선의 다른 구역에서는 사태가 완전히 달랐다. 네르비이족은 로마군이 기습을 당하며 벌어진 혼란으로 생긴 전선의 빈틈을 파고들어, 로마 전열의 배후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를 막으려던 로마 기병과 산개병들의 시도는 허사였고, 동맹 갈리아 부대들은 급기야 사기를 잃고 와해되어 도주했다.

전투는 카이사르에게 완패처럼 보였고, 그의 군대는 궤멸의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말을 몰아 붕괴 위기에 처한 전선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병사 하나의 방패를 집어 들고, 적의 압박에 밀려 후퇴하던 부대들의 백인대장들을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자신을 따르라고 명했다. 그리고 한 명의 평범한 병사처럼 전투 한복판에 뛰어든 것이다. 지휘관의 이런 용기 덕분에 병사들의 사기는 되살아났고, 계속되는 참혹한 적의 압박 속에서도 전선의 구멍은 조금씩 메워져 갔다.

전세의 역전과 네르비이의 최후

이제 로마군은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명성 높은 제10군단이 마주한 적을 격파한 뒤 우익으로 선회하며, 이번에는 네르비이족을 측면에서 포위했다. 동시에 흩어졌던 로마 기병대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전투의 위기는 넘어갔다. 병사들의 규율과 지휘관의 믿기 힘든 침착함이 기적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이제는 무모한 돌격의 대가를 치를 네르비이족의 차례였다. 로마군과 강 사이에 갇힌 네르비이 전사들은 끝까지, 정말로 영웅적으로 싸웠다.

집요한 사냥꾼 앞에 몰린 짐승처럼, 네르비이족은 동료들의 시체 위에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전사한 동료들의 시체에서 화살과 투창을 집어 들어 다시 로마군에게 던졌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고 싸워나가는 한, 이 용맹한 자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방패 뒤에 숨은 로마 군단병들은 그들을 조각내었다. 팔다리가 순식간에 잘려 나갔고, 고통의 비명과 죽음의 신음이 하늘을 채웠다. 이윽고 정적이 내려왔다. 네르비이 전사들은 궤멸적으로 섬멸되었다. 과연 수십 명 정도가 살아남았는지조차 의문으로 남는다.

소수의 생존자만 남긴 전투… 로마에 맞선 용감한 벨가이족 네르비이의 영웅적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