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해적에게 잡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무서운 복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 해적에게 잡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무서운 복수

권력의 중심으로 뛰어든 젊은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젊은 시절부터 로마의 공직 생활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마리우스 진영에 속해 있었던 그는 제1차 내전 당시 술라의 손에 죽음의 위기까지 맞기도 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로마를 떠나 레스보스와 킬리키아에서 두 차례의 군사 원정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다 술라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기원전 78년) 즉시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카이사르는 마케도니아 속주의 전임 총독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를 고발하는 일을 자청했습니다. 돌라벨라는 그리스인들에게 거액을 강요하며 사실상 그들을 착취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들이 그의 행태를 고발하자 카이사르는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역할을 나섰습니다. 결국 돌라벨라를 유죄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활동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아 그리스인들의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다만 귀족파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행보는 카이사르에 대한 새로운 공격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로도스로 가던 길, 해적의 습격

이에 카이사르는 다시 로마를 떠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합니다. 이번에는 유명한 그리스 웅변가 아폴로니오스 몰론에게 배우기 위해 로도스로 향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항해 도중, 기원전 75년 파르마쿠사 섬 근해에서 그의 배가 해적들에게 나포되고 말았습니다.

몸값 20탈렌트? 아니, 최소 50탈렌트다

해적들은 부유한 몸값을 노렸기 때문에 그를 크게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해적들은 그의 석방 조건으로 무려 20탈렌트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오히려 웃으며, 자신은 최소한 50탈렌트짜리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카이사르는 40일 동안 해적들의 포로로 지냈습니다. 그 모든 기간 동안 카이사르는 조금의 두려움도 내비치지 않은 채, 자신이 풀려나는 즉시 너희들을 전부 십자가에 처형하겠다고 못박았습니다. 킬리키아 해적들은 젊은 로마인의 이 말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며 웃어넘겼습니다.

마침내 몸값이 전달되고 카이사르는 풀려났습니다. 그는 곧바로 밀레토스로 가서 함대를 급조한 뒤 해적들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끝내 지킨 약속, 십자가형

카이사르는 붙잡힌 해적들을 고문했고, 산 채로 생포된 이들은 정확히 자신이 예고했던 대로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일화에 대해 고대 사학자들의 견해는 서로 다릅니다. 수에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로도스로 가는 길에 해적에게 붙잡혔다고 기술했고, 플루타르코스는 비티니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 해적에게 잡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무서운 복수

로마군과 해적의 충돌.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 해적에게 잡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무서운 복수

카이사르와 해적들.